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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3. Looking For a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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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번진짜안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7건 조회 7,229회 작성일 06-09-1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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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악몽을 꾸었다. 가을이 찾아오고 찬바람이 들기 시작하면 가끔씩 꾸는 꿈이다.

Do You Have Any Vacancy? I'm Looking For a Job.
이 문장을 쓰며 도어투 도어를 하는 꿈이다. 나는 성냥팔이 소년같은 표정을 하고 있고, 거대도시의 어디에도 내가 일 할 곳은 없다는 우수에 잠긴 채 터덜터덜 걷다가 가로등에 띵 하고 부딪히며 잠에서 깨어난다. 깨어나면 항상 이마가 아프다.

어쨌든, 그 때 사람 발바닥이 개 발바닥이 되도록 걸어다니며 일자리를 찾아헤멨으나 참으로 일자리 구하기는 쉬운 게 아니었었다.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행위이자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려는 행위이다. 모든 것이 집중 되어있는 메트로폴리탄. 분명히 일자리들도 싸그리 몰려있다. 처음엔 영어도 서툴고 (지금은 더 서툴러졌지만)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다가 나는 런던 파트타임 ? 역사상 전례가 많지 않은 관광비자 인간이자 결정적으로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음 좋군. 잘생긴데다(꺄아 거짓말이다^^) 일도 잘 하겠어. 내일 인터뷰 할 테니 학생 비자 찍힌 여권 복사해 와.”
그러면 나는
“웁스 저 학생 비자 없는데여.” 라고 솔직히 고백해버리고 말았었다.

하지만 그건 다 배 부르고 쓸 돈 남아있을 때 얘기였고, 돈이 똥줄을 태우던 어느 날 잡았던 기회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니 비자 뭐여?”
“당근 학생. 복사 해 올까요?”
음 됐어. 복사까진. 뭐. 내일 부터 나와. 트레이닝 하게.

나야 물론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나오라는 얘기인가? 하고 생각했었지만, 하우스메이트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그건 츄리닝 얘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실수하지 않았었다.

1. 자, 그런데 일자리는 왜 구해야 하는가?

이것은 너무나 뻔한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먹고 살아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먹고 사는 데는 돈이라는 게 든다.
그래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살인적인 물가라는 Killer 런던의 표적이 되어선 안 된다.

자, 캐피탈리즘의 표본이 이곳에 있다.
당장 응가가 밀고 나오는데, 돈 20P가 없으면 뿌지직을 할 수 없는 이곳 런던의 화장실 현실을 보라.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것이 돈이다. 숨은 공짜로 쉴 수 있다는 점이 고마울 지경이다.

세계 최강의 방값, 세계 일등 교통비! 짜릿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일자리를 구한다. 그리고 사경을 헤메는 고국의 경제사정을 뻔히 알면서 고국의 돈을 쓰기가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한국의 상품수지 흑자를 서비스수지 적자가 다 까먹고 있다고 들었다. 즉 수출해서 번 돈의 70% 이상을 외국관광/유학생들이 소비한다는 뉴스였다. (돈 많은 아줌마 아저씨 관광객들이 나가서 펑펑 써대는 돈이 그런 돈의 8-90% 비율이겠지만. 뉴스에선 꼭 유학생 송금 어쩌고, 하면서 걸고 넘어진다.)
믿을만한 뉴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라가 망하면 유학이고 나발이고 소용없잖은가.
그래서 일단 여기서 돈을 벌어야 한다! -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이고,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

2. 그렇다면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일단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건 역시 무작정 두들기는 방법, 즉 도어 투 도어다.
이 방법은 한군데만 매일 쪼는 '갔던 데 또 간다' 스킬과 하나만 걸려라 식의 '하루에 CV 200만장 뿌리기' 스킬등을 구사할 수 있다.
맨날 쪼면 어쨌든 써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이 뿌리다 보면 한 번은 걸린다.

그리고 비슷한 쪼기 방법으론 '?센터 짜내기' 라는 스킬이 있다.
하여간 ?센터 매일가서 매일 담당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일자리를 토해낼 때 까지!

그리고 편법으로는 아는 사람을 일단 많이 만들고 그들이 일자리를 새끼 쳐 줄 때 까지 기다리는 스킬이 있다.

하지만 도어 투 도어에는 한계라는 게 있다.
아무리 CV혹은 애플리케이숀 폼을 남발해도 베이컨시 라는 게 없어서 연락 따위가 오지 않는 경우와, 지쳐버리는 경우,
체력의 한계등이 우리들이 일자리를 못 구하도록 최선을 다해 훼방해댄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돌아다녀야 한다.
아무도 가만히 집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거저 주지 않는다.
영국에 와서 일자리를 돈 받고 파는 엽기적인 경우도 보았고 일자리 하나를 놓고 인간성을 상실해가며 경쟁하는 경우도 보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는 난생 못 봤다.

(베이컨을 구워먹고 나가면 베이컨시를 만날 수 있다는 속담은 뻥인걸로 확인되었다.)

해서 일단 돌아다녀야만 하되,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 번의 인터뷰에서 '날 좀 써주면 안되겠어? 나 일 잘하는데...' 라는 식의 비굴한 태도로 버벅거리다가 실패했었다.
'어이, 날 쓰겠어 안 쓰겠어?' 식의 강한 자신감으로 인터뷰를 하면 더 영어도 잘 들리고 말도 잘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이게 인터뷰 요령이자 더 이쪽 문화 스타일에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우습게도, 일자리를 도어투 도어로 찾다가 그 다리품 판 노력여하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어떤 빈자리를 주선해줘서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인간관계도 좋고 봐야겠지만
누군가 일자리를 물어다 줄 거라고 기대만 하고 있기보단 죽어라 일자리 구하러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god of vacancy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순전히 도어투 도어로 일자리를 딱 찝어내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성공하는 사람도 많다.

?센터 짜내기 기술은 일단 영어가 안 되서 영어 공부부터 하고 오라는데 짜내고 말고 할 수가 없어서 안 써봤다.

내가 일자리 구했던 구질구질한 경험을 간략히 늘어놓자면 이렇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학원 갔다가 지도보고 어떤 지역을 찍는다. 그 Feel 이 땡기는 동네에 가서 베이컨시를 묻는다.
물론 업종을 안 따진다.
간혹 아무버스 타고 가다가 아무데나 내려서 아무 가게나 들어간다.
'god of vacancy'에게 잘보이려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다가 어떤 펍에 인터뷰만 한 다음 연락준다고 하고 연락 안왔었는데
한국에선 내 얼굴 면접 본다음엔 안 써준 회사가 없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게 뭔 고생이냐 싶었는데
스타일도 계속 구겨지고 차라리 돌아갈까 하는 마음까지 들어서 진짜 쓸쓸히 걸었는데 하우스메이트 중에 누군가가 어딘가에
오토바이로 쓰시 배달하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 가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불현듯 스쳐갔는데 그 가게를 찾아갔더니 딱 베이컨시가 있었다.
그 다음날 난 바로 일하기 시작했다.
'god of vacancy' 가 슬슬 던져대는 일자리에 대한 '암시'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리고 혹시 처음 온 사람들이나 올 사람들에게 조언하자면
수백 번을 아무 가게나 아무 시간에나 들락날락 거렸지만 한 번도 문전박대를 한다거나 때리는 경우는 못 봤다.
안심해도 좋다. 겁 없이 일자리를 구하라.
“?? 그딴거 없어. 이 좁쌀만한 놈아. 딴데 가서 알아 봐.” 라고 매몰차게 말하는 경우도 엄따.
칙칙한 공장지대와 좀 무서운 뒷골목의 험악한 직종들, (세차장, 물류창고)도 역시나 식당이나 펍들처럼 친절하고 편했다.
심지어 덩치 좋은 흑인이 너 뭐야? 식으로 물어봐도 일자리 찾으려고. 라고 말하면
어익후 없어, 미안. 이라고 어울리지 않게 얘기했었다.

이렇게 친절하게 빈자리가 없다면서 미안해하는 모습은 거의 문화충격에 가깝다.
이것은 관용의 도시 런던이 가진 유일한 좋은 점이지 싶다.

한국사회는 고용이 필요한 사람과 고용되려는 사람사이에 계급이란 게 존재한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가장 혐오스러운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일부' 한국 식당, 한국회사 에서도 그런 이상한 비합리가 자행되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자기가 고용한 사람에 대해 인격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하루라도 먼저 일하고 있는 선배라면 나중에 일하러 들어온 사람을 우습게 생각해도 좋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런던이지만 여긴 최소한 계급 따윈 없는 것이다.

일자리에 대한 일반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다들 일자리를 구하는 데는 보통 평균 <3개월> 씩은 고생하는 것 같다.
일자리가 안 구해져서 고민인 분들은 <3개월>을 채우면 뭔가 희망이 보일 것이다.
아니 젠장 왜 <3개월> 인지는 빌어먹을 'god of vacancy'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또 다른 큰 특징은 거의 지쳐서 극에 달했을 때, 혹은 다음 주 방값 낼 돈도 없을 만큼 궁지에 몰렸을 때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본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도 대충 유사했다. 일자리 구한 얘기들을 듣다보면 극한이나, 궁지에 몰렸을 때였다.
궁지란, 인간의 숨은 능력을 펼치게 하는 출구인지도 모른다.

만약 일자리를 빨리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진 돈을 다 남 주거나 뭐 사버리고 스스로 극한의 궁지를 만들라. -_-;;

돈을 벌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 'god of vacancy'을 감동시키는 것 같다.

찾으면 길이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베이컨을 구워먹고 나가면 베이컨시를 만날 수 있다는 속담은 뻥인걸로 확인되었다.

3. 일자리를 구하면 그 다음은?

일자리만 구하면 우리들의 런던생활이 바로 성공적인 것으로 돌변한다면 좋겠지만
우리들은 아마도 또 다른 목적들을 갖고 있다.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서 런던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일 때문에 지쳐서 자기가 할 목적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수영장에 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려고도 하지 않는 바보짓과 같다.
우리가 가진 목적이 멋지게 풀을 가르는 것이라면 작업복 차림으론 곤란하지 않겠는가.

공부하러 온 경우, 일단 돈부터 이빠이 벌어놓고 그담에 여유 있게 공부한다, 라는 순서로 일만 하다가
돈 버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술 마시다가 돈이 결코 안 모아져서 공부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비자 떨어져서
돌아가는 경우를 우려해야 하고
풀타임으로 뛰다가 몸이 상하는 경우도 우려해야 한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경우엔
결코 둘 다 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안 짤릴 만큼' 만 에너지를 소비하는 편이 현명한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안 짤릴 만큼만 일해도 다른 유럽 애들이나 남미 애들보단 일을 잘하는 것 같다.

여하간, 돈을 번다는 것은 신성한 일이고, 공부를 한다는 것도 신성한 일이다.
모두들 두 신성을 잘 조절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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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냠냠님의 댓글

냠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와.. 진짜 초공감.. 극한이나 궁지에 몰렸을때 구해진다.. 그것도 3개월. ㅎㅎ
완전 공감해요 15번님글... ^^

안녕하세요님의 댓글

안녕하세요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글 쭉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네요 ㅎㅎ 글을 참 잘 쓰세요 ^^

왕팬님의 댓글

왕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너두 좋아하는 글이라~~ 퍼가요..출처 밝히면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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