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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정담 영국, 더치페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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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돌아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663회 작성일 17-03-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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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페이(Dutch pay)"란 말의 유래에도 다소 배타적인 영국 문화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통상 음식값 등을 각자 내는 것을 일컫는다.

영국에 살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접하던 다양한 음식은 영국에서 살면서 참 충족되기 어려운 점이었다. 특히 음식문화가 빈약한 영국에서 우리가족은 나름대로 영국 음식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마트에 널려있는 각종 치즈와 샐러드, 쿠키 등은 영국에서 즐길 수 있는 호사 중 하나로 여겼다. 고기류도 비교적 저렴하게 사먹을 수 있었고, 간혹 펍에서 먹던 영국식 아침식사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식도락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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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영국식 아침식사, 별 맛 없었던 이것도 이제는 생각난다.

하지만 여전히 각종 양념과 재료를 버무려 만들어내는 한국 음식 맛을 우리 집 어린 막내의 기억에도 남아있는 걸 보면, 사람의 기억이란 입맛을 통해 참 오래 지속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각종 해산물로 만들어내는 한국의 음식들은 해산물이라고는 피쉬 앤 칩스의 대구나 연어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 영국에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구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의 더치페이는 아직은 어색 

그다지 길지 않은 1년 반의 시간 동안 못 먹어 고생(?) 했다고 생각했는지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의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적잖은 식사 대접(?)을 받았다. 영국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외식 비용이긴 했지만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오면서 당연한 듯 상대방이 음식값을 계산했고, 나는 영국에서 가져온 간단한 기념품이나 선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런데 필자는 이렇게 얻어 먹고는 식당 문을 나서면서 왠지 모를 어색함이 속에 남곤 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다음에는 내가 한번 사면 되지 하고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든 건 영국에서 조금은 다른 관행에 익숙해졌던 탓일 것이다.

영국에서 외국인들과 식사를 할 일이 종종 있었지만 어느 한쪽이 음식값을 계산하는 경우는 없었다. 각자 주문하고 각자 계산하는 이른바 더치 페이가 당연했다. 심지어 한국인들 조차 내가 식사비를 낸다 하면 다소 부담스러워 했다. 내가 식사를 주문해 오면, 상대방이 음료나 맥주를 시켜왔다. 외식비용이 한국에 비해 비싼 영국에서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내가 먹는 것은 내가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각자의 식판에 각자의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서양식과 음식을 한 상 차리고 나눠먹는 한국식 음식문화 차이도 있지만, 음식값을 각자 내는 더치 페이는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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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그래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도 많이 보편화된 더치 페이


부담 없는 선물은 마음의 표현

물론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에서까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사회생활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이와 같은 인식이 너무나 당연시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문화는 종종 한끼 식사쯤이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음식값을 내야하고, 술값을 내야하고, 골프 라운딩 비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것은 대납자의 선의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에 도입된 김영란법의 취지 역시, 한끼 식사비나 선물의 상한선이 3만원이냐 5만원이냐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올 초 영국을 떠나오면서, 고맙고 아쉬운 맘에 몇 분께 선물을 하고 또 선물을 적잖이 받기도 했다.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께도 선물을 드렸다. 5파운드짜리 초코렛, 6파운드짜리 벌꿀캔디, 7파운드 짜리 와인 등을 드렸고,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코코아 분말, 장바구니, 카드지갑, 메모장 등을 받았다. 그다지 부담스런 가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그만 카드에 감사의 맘을 담아 주고 받았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별 부담 없이 감사의 맘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우리가 남이가”, 관계에 집착하는 한국

선물은 마음의 표현이다. 한끼 식사도 선물이다. 감사한 맘, 함께 하고 싶은 맘,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서로 부담 없이 주고 받는 선물은 오히려 더 좋은 관계를 지속시켜 준다. 작은 선물을 받았으면, 다음 기회에는 내가 작은 선물을 해주는 관계의 지속은 서로의 관계를 더 자연스럽게 이어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선물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맘을 전하는 작은 선물은 언제든 환영이다. 다만 어떤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의 선물이 되지 않는다는 점만 명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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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역시 작은 선물은 마음의 선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좋다 


한국에 와서 반가운 분들께서 사주시는 음식을 먹고 필자가 괜한 오버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국에 돌아와 보니 매우 긍정적으로 바뀐 것 중에 하나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이기에 이 법이 우리사회에 제대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특히 법 시행 초기에 다소 반감이 있었던 이유가, 지나치게 관계에 중독되어 있어 뇌물선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이 그 동안 영국사회에 살면서 뚜렷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야 전세계에서 한국 사람들만한 사람들이 없지만, 지나친 관계에 집착이 다소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한국사회에는 참 많은 것 같다.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이유다.

(사진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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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국에 돌아오고 몇 년이 지나니 저 English breakfast 생각이 나더라구요 ㅎ
그래서 직접 해먹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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