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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견문 나를 사랑하는 영국인, 나라를 사랑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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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윰윰쾅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728회 작성일 21-05-0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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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윤여정 씨가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했던 수상소감이 화제다.  

‘고상한 척, 우월한 척하는 (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쁘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정말 그렇게 젠체하고 자부심에 가득찬 사람들일까? 

글쎄, 영국인들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 속내까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고상한 척하는 영국식 액센트를 구사하면서 자신들의 제도와 전통을 세계에 이식하고 다녔던 나라, 인도를 내어 주더라도 세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고 하던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후예들이니 얼마나 국가적 자부심이 넘치겠냐는 말이다. 



그러나 거만하다기엔 너무나 개방적인 영국인들 


세상에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만은, 영국사회는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개방적인 곳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 국가나 민족에 기반한 자부심은 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영국인들이 국가나 민족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윤여정씨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통해서도 증명이 된 것이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한 평생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도 능력만 된다면 자신들 최고 권위의 상으로써 찬사를 보내줄 수 있는 나라가 영국이다. 

현 런던의 시장이 파키스탄 출신이거나, 전 영란은행 총재는 캐나다 은행의 총재를 지냈던 캐나다 인이라는 사실은 새삼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으로 친다면 동남아에서 온 이민자 2세가 서울 시장직을 수행하고, 일본이나 중국이나 일본인이 금융 수장을 역임하는 격이다. 

Pew 리서치의 서베이 결과 가족 구성원으로 무슬림을 받아들여도 괜찮냐는 응답에는 절반이 넘는 영국인들이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응답한 것만 봐도, 영국인들이 타문화와 인종에 얼마나 관대한 사람들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영국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민족과 인종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권리이다. 




‘다자에서 하나로’에 관심을 기울이는 영국 (Out of many, one) 


만약 영국인들이 실제로 Snobbish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오만함은 영국인이라는 국가적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와 가족,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테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마치 동심원이 퍼져 나가듯이 나와 가족, 고향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의 순으로 향한다. 

한국은 그와 반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 가장 강조되는 것 같다. 나와 가족, 네 주변을 먼저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이라는 말은 한국사회에 살면서 정말 듣기 힘든 말이다. 

서양에서는 주소를 쓸 때,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부터 출발하여 나라로 나아가지만, 한국에서는 국가에서 출발해서 자신이 사는 지역으로 내려온다. 이름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영국은 Smith (Family name) 이기 이전에 John (First name)이지만, 한국은 '길동' 이기 이전에 '홍'씨 집안 사람이다. 이러한 차이는 어쩌면 두 지역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개인을 강조하는 영국인들의 이러한 성향은 그들이 열광하는 축구팀에서도 잘 확인된다. 모두 잘 알다시피 영국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프로축구 경기가 국가대항전보다 훨씬 더 인기가 높다. 영국에서 가장 인기없는 축구팀은 영국국가대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까 영국인들은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사랑하는 취향과 신념을 별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응원하는 팀을 존중하지만, 내 팀을 응원하는 것을 막지는 말라, 네 옷 스타일도 존중하지만 나의 패션 취향에 간섭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얼마나 오만(snobbish)한가. 


그리고 이러한 영국 사회의 모토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라틴어 문구 E Pluribus Unum (다자에서 하나로: Out of many, one)에서 잘 나타난다. 영국 사회는 이렇게 snobbish한 개개인들(many)을 어떻게 하나(One)의 사회로 엮어내는지를 고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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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가 런던시장을 하고, 캐나다인이 영란은행 총재를 맡기고,
한국에서 평생을 연기한 여배우에게 아카데미 상을 수여하는 것을 보면 영국인들이 그렇게까지 오만한지는 잘 모르겠다.



멸사봉공의 한국: 사(私)를 억누르고 공(公)을 받든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성향은 한국사회와 분명한 차이를 띄는 부분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교육받는다. 

이것 자체가 뭐가 문제이겠냐 만은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정작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대한독립만세’의 중요성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개인독립만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정작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기 이전에 개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본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먼저 탐구해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혹자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형제 및 친구들과 우애 깊게 지내라’는 한국의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내용을 보면서 조선시대 ‘소학(小學)’의 대한민국 버전이라는 말을 남겼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정작 ‘나’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축구팀인 대한민국 경기에는 관심이 생기지만, 정작 ‘내’ 축구팀인 지역리그에는 별 관심이 생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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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경기가 아닌 프로스포츠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한 영국인 지인은 심지어 나치가 연상된다고까지 말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주한 미국대사관의 문정관을 지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사회의 이런 특징을 정치적 상황과 결부해 잘 포착해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를 천년 이상 유지해온 놀라운 사례이지만, 동시에 국가와 개인 사이에 자발적 결사체가 부재한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특이한 사례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개인과 국가를 이어주는 ‘중간매개집단’ – 즉, 유럽의 '길드(guild)'와 같은 직업 조합이나 일본의 ‘무라(村)'나 '마치(町)'와 같은 자치 조직 – 이 부재했던 한국에서 개인들은 오로지 중앙정치만을 향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질주해왔다고 표현한다. 


‘나’와 ‘내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이 부족했으며 이를 위한 ‘중간매개집단’이 없었던 한국에서 정치란, 나와 내 주변의 삶을 바꾸는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를 위한다는 명분 하의 중앙 권력 헤게모니 다툼으로 전락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것은 중앙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지위쟁탈전이며 정치는 우리 편 구성원들에게 권력을 나눠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었다.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것에서부터,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비슷한 소득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게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다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본인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나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소중히 여기라고 배우기 이전에,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라고 먼저 배웠다. 개개인 본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돌아보는게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은 넘치고 넘쳤다. 사(私)보다 공(公)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다.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상황에 대한 관심이 아닌 ‘우리’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이러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개개인들을 원자화/파편화 시켜왔다. 


필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한국어 관용구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한다’는 표현이다. 우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기 이전에 ‘나’의 생각이 어떠한지 먼저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개인으로서 생각하는 훈련에서부터 비로소 다른 개개인들인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심도 생겨난다.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 우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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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제는 저런 개념이 잘못 받아드려져서 개인적인것과 이기적인것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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