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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08. 2016

스코틀랜드식 순대 해기스를 먹을 줄 아냐는 질문

 그들의 자부심을 엿보다


“해기스 먹을 줄 알아요? 먹어본 적 있어요?” 


옆자리에 앉았던 캐서린 엄마 크리스틴이 나에게 물었다. 에든버러에 온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주최했던 '퀴즈 나이트'라는 학부모 초청 이벤트에서였다. 사회자가 내는 퀴즈를 풀며 기금을 마련하는 행사였는데 강당 한편에 음식이 마련돼 있었다. 거기에 해기스라는 음식이 있었다. 먹을 줄 아냐니, 입으로 들어가는 거 잘근잘근 씹어 삼키면 되는 거 아닌가? 최강 비위를 자랑하는 내가 못 먹는 게 어디 있을까마는. 


그런데 그건 80년대 초 여덟 살 무렵 여름 방학에 충청도 할머니 댁 시골로 놀러 갔을 때 받았던 질문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조그마한 계집애가 신기했던지 동네 언니, 오빠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는데 한 남자애가 나에게 물었다.


“너 이거 만질 줄 아니?”



그 애의 손에는 작은 청개구리가 한 마리 들려 있었고 옆에 서 있던 몇몇은 키득거렸다.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 거지만 아마 질문에는 숨겨진 말이 있었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너 이거 만질 줄 아니? (우리는 다 만질 수 있단다.)”


새침했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 손바닥 위에 가만히 개구리를 올려놓았다. 미끄덩거리는 것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다 개구리가 폴짝 뛰어 손바닥을 벗어나자 깜짝 놀란 나는 “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다. 시골 아이들의 유치하면서도 소박한 자부심, 논두렁의 개구리쯤은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는 그런 자부심 비슷한 게 그날의 웃음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개구리는 무서웠고 내 얼굴은 빨개졌다. 


“해기스 먹을 줄 알아요?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잘 먹는데) 먹어본 적 있어요? ” 


“해기스가 뭔가요?”


스코틀랜드 토박이인 크리스틴은 해기스가 양의 내장을 다져 오트밀, 고추, 양파 등과 섞어 위장에 싸서 만든 음식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그게 스코틀랜드의 대표 음식이라고 덧붙였다. 가만, 그런 음식 한국에도 있는데!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순대?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어요. 한 번 먹어 볼게요.”


접시에 해기스라 불리는 음식을 조금 덜어서 가져왔다. 조명이 어둡고 사람이 많아 그것의 형태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자리에 앉아 난생처음 맛보게 될 음식을 한 입 떠 넣으려 하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크리스틴, 피오나, 타냐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는 게 느껴졌다.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갓 스코틀랜드 땅을 밞은 동양 여자가 동물의 내장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할 것인가 아닌가.   


“맛있는데요? 이거 다 먹고 더 먹어야겠어요!”


시식 소감을 말하자 셋은 “Lovely”를 외치며 소리 내어 웃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고대 로마제국 때 로마에게 점령당하지 않았고, 정복왕 윌리엄에게 정복당하지 않았다는 자부심 같은 게 있다. 영국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자기들은 잉글랜드와는 다르다는 정체성이 확실하다. 비록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는 부결되었지만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이므로 “자부심 강하다면서 왜 독립하지 않느냐”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들의 자부심은 자기네 문화를 즐기고 이어 나가려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일부 학교에서 스코틀랜드 고유 언어인 게일어를 가르치고, 결혼식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때에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는다. 스코틀랜드 댄스인 케일리(Cèilidh)를 출 기회는 또  얼마나 많은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생일 파티 같은 행사에서 케일리를 추며 즐긴다.


해기스를 먹는 것도 그중 하나다. 14세기 즈음 사냥 후 동물의 내장이 상하기 전에 빨리 조리하여 먹기 위해 만들어진 게 해기스라고도 하고, 원래는 잉글랜드의 음식이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건 21세기 오늘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해기스를 자신들의 전통 음식이라 여기며 즐긴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열렸던 '퀴즈 나이트'처럼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해기스 - 순대 닮았죠?



스코틀랜드에 살면서 해기스를 여러 번 먹었다. 식당에서 고급스럽게 와인 소스를 끼얹은 걸 먹기도 했고 마트에서 소시지처럼 파는 걸 사서 집에서 먹은 적도 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해기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짭조름하면서도 향신 채소가 들어가 매콤하기도 하고 오트밀 같은 곡류 덕분에 고소한 맛도 있는 해기스 맛에 반한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스코틀랜드에서 순대 사촌쯤 되는 음식을 통해 이 나라에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이다.


만약 이곳을 여행하다가 해기스를 먹어봤다면 그 경험을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나누길 권한다. 외국인이 우리에게 김치를 먹어봤다며 "마시써"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면 기쁘지 않겠는가. 맛이 있었다면 있는 데로, 없었다면 없는 데로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그래서 소중하다. 특히 그것이 그들의 자부심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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