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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Nov 06. 2017

라운드 어바웃, 갈 길을 찾아 돌다

아직도 도는 중?

영국 도로에는 ‘라운드 어바웃’이 아주 많다. 우리말로는 회전교차로라고 하는데 교차로 가운데 원 모양의 공간을 중심으로 해서 차가 원형으로 이동하는 통행 시스템이다.


자가용을 사기 전, 지인의 차를 얻어 탈 때마다 봤던 이 시스템은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도로 위 자동차들은 삼거리, 사거리 때로는 오거리, 육거리 등에 설치된 라운드 어바웃을 돌고 돌아 원하는 길로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잘 물린 톱니바퀴처럼 이번엔 이 차, 다음번엔 저 차. 신호등이 없어도 교통량이 많아도 운전자들은 자신이 언제 들어가고 빠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경험하지 않은 경이로움은 두려움으로 번지곤 했다. 조만간 나도 운전을 해야 할 텐데 익숙해질 수 있을까? 진입하지 못해서 뒤차가 빵빵거리면 어쩌지? 게다가 핸들은 오른쪽에 있다던데. 운전이라는 두 단어만 생각하면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얼음! 하고 멈춘 느낌이었다. 시도하기 전부터 겁부터 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했으련만 아이들을 방과 후 프로그램에 보내거나 할인 혜택이 수시로 바뀌는 마트 여러 곳을 돌아다니려면 운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직접 운전대를 잡아보니 운전 방향이 반대인 것은 생각보다 쉽게 익숙해졌다. 비보호로 우회전을 하는 것도, 중앙차선이 점선이라 반대편 차선을 넘어 추월이 가능하다는 것도 금세 적응했다. 예상 데로 라운드 어바웃은 가장 나중에 친숙해지긴 했다. 한 번은 영국에 와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에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라운드 어바웃을 돌 때마다 신경 쓰여 죽겠어. 나가야 할 길을 놓치면 어떡하냐고"


그녀가 대답했다. 


"계속 돌아. 몇 바퀴고 돌아도 돼. 맞는 길 찾을 때까지."


맞다. 돌면 되는 거였다. 잘못하다가 빠져나가지 못했을 경우에는 당황하지 말고 계속 돌아야 한다. 가야 할 길이 나올 때까지. 긴가민가했을 때 그냥 나가버리면 제 길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므로 차라리 도는 게 낫다. 모두가 규칙을 알고 잘 지키는 곳에서 이것은 적응만 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삶의 라운드 어바웃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빠져나가야 할 곳이 확실한 행복 시스템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요즘 사람들은 똑똑해서 공부를 잘해 일류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반드시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런데 그다음은?


세계여행 1회, 책 출간 2회, 퇴사 3회, 미니멀 라이프 시도 4회를 실시하면 행복합니다 같은 이정표 같은 게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각자의 삶에는 스스로 알아서 빠져나가야 할 각각의 라운드 어바웃이 있을 뿐이라 우리는 오늘도 뱅글뱅글 돌 수밖에 없다. 맞는 길을 찾을 때까지.


나? 10년 동안 돌았더니 아고, 어지러워 죽겠다.




라운드어바웃이 나타난다는 걸 알려주는 교통표지판 (잉글랜드) /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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