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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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가 아이엘츠 감독관으로 출장 간다고 학교에 안 나왔다. 대타로 들어온 선생이 데보라였다. 데보라는 호주에서 온 녀석인데 나와 동갑이었다. 부친이 사업차 영국에 올 때 따라온 건데 거의 놀러 온 녀석이라 다른 선생들과는 결이 좀 달랐다.
데보라가 노브라로 출근했다.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해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젊어서 행동이 그런 건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데 직장에서 복장은 한번 점검해 봐야 하지 않겠나?
겉옷이라도 하나 걸치고 오지 달랑 티셔츠 한 장, 그것도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덱스 티셔츠를 쳐 입고 나왔다. 아무것도 안 입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적나라하게 다 보이는 데다가 쓸데없이 컸다. 일어서서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끄적일 때면 좌우의 그것이 대각선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내 눈을 괴롭혔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맞은 편에 앉은 스위스에 온 티나가 얼굴에 웃음을 잔뜩 머금고 나에게 말했다. “학생, 앞에 봐야지?” 난 조용히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12명 중 남학생은 나와 이태리에서 온 마리오 둘뿐이었다. 쉬는 시간에 우리는 조퇴했다. 학교를 나서며 데보라 미친거 아니냐고 서로 투덜댔다.

<이태리 국민 와인이라 현지에서는 저렴했다.>
너무 일찍 나와서 어디 갈 곳이 없었다. 마리오에게 피자 만드는 거 가르쳐 달라고 우리 집으로 데려갔다. 먼저 테스코에 들러 재료를 구입하며 와인을 한병 샀다. 마리오가 이태리 국민 와인이라며 끼안띠를 소개해 줬다. 이게 영국 발음으로 치안티(Chianti)라 하는데 이태리 발음 표기로는 키안티, 내귀에는 끼안띠로 들렸다. 정말 맛있었다.
진짜 이탈리안 피자는 건강식이 맞다.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치즈 올리고 끝이었다. 와인과 함께 피자를 먹으며 마리오가 들려주는 이태리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이태리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가 항공사 Ryanair 웹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첫 페이지에 커다랗게 1P 이벤트 배너가 떴다.

<1P 이벤트는 더 이상 없다.>
왕복 항공권이 1펜스였다. 한정 판매여서 바로 구입했는데, 이태리는 밀라노행 티켓이 유일했다. 구입 후 학교에 있는 학생들에게 퍼뜨렸다. 마지막 1P 이벤트는 2007년으로 나온다. 그 뒤로는 40% 할인과 BOGO Free 이벤트만 진행 중이다. 이태리행 티켓을 구매한 한국인은 나 포함 6명, 일본인 1명이었다. 같은 날 함께 출발했는데 돌아올 땐 각자 따로 돌아왔다.
밀라노에서 일본인 여학생이 로마행 기차를 타러 가는데 한국인 남학생 한 명이 따라갔다. 그 여학생이 불편했는지 어딘가에서 따돌리고 혼자 갔다. 한국인 커플이 둘 있었다. 한 커플은 자기들 계획대로 떠났는데 여행 중 싸웠는지 따로 돌아왔다. 한 커플은 날 따라왔다. 날 따라온 커플은 첫날부터 싸웠다. 불편해서 내가 따로 다니자고 말했는데 남친이라는 놈이 같이 가자고 따라왔다. 둘째 날에도 또 싸웠다. 짜증나서 다음날 이른 아침 자고 있을 때 메모한장 남겨두고 홀로 떠났다. 여행을 망쳤다.
학교에 한국인들이 많았다. 처음엔 싫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이상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입에 담기 민망한 일들이 많았다. 자기 관리라는 말은 쉬운데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내 상태, 심리적, 육체적 상태를 볼 수 있어야 하고, 망가질 때까지 안 가게 관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면의 욕구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식욕, 성욕, 수면욕 기타 여러 욕구가 있는데, 이걸 억제하는 것보다 여행이나 운동, 레저 등 여가 생활로 풀어나가면 어렵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 이걸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고 돌발행동을 하면서 타인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여행을 하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혼자 하기 어려우면 동호회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지역 사회나 학교에 소셜 프로그램이 많아서 모임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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