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13) > 영국일기

본문 바로가기

 <  영국이야기  <  영국일기

옛날 일기(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64.141) 댓글 2건 조회 56회 작성일 26-02-22 20:16

본문

2001818일 토요일

 

꿈만 같았던 이스트본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대학원 개강일은 101일인데, 예비 과정이 917일부터 시작이라 일찍 올라가 기숙사를 구해야 했다. 주차장 있는 기숙사 구하기가 어려웠다. 기숙사는 차고지 등록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올라갈 때 동생 2명을 데리고 올라갔다.

 

한명은 내 모교 직속 후배였다. 99학번으로 2학년 마치고 옥스퍼드 교환학생으로 온 녀석이었다. 한국에서 함께 온 것은 아니고, 우연히 같은 어학원, 같은 반에 있었다. 하숙집 노부부가 영어 이름을 지어줬는데, 자신들의 손녀 이름인 앨리라고 불렀다. 실제로 손녀처럼 대해주셨다. 앨리의 영어는 시간이 흐를수록 원어민에 가까워졌다. 똑똑한 녀석이라 학습 능력이 스펀지 급이었는데, 젠틀한 노부부가 사용하는 고상한 영국식 영어를 모두 흡수했다. 앨리는 이스트본 떠날 때까지 하숙집에 머물렀다.

 

내 후배라 다른 동생들보다 조금 더 챙겨줬다. 먹고 싶은 한식도 자주 만들어 주고, 여행 갈 땐 거의 매번 데리고 다녔다. 런던 올라갈 때 옥스퍼드에 먼저 들러 기숙사에 데려다줬다. 왜소한 체구를 가진 아이라 걱정됐지만 의외로 적응을 잘했다. LSE에 금융경제학을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님이 계셨다. 신현송 교수님인데 옥스퍼드 경제학과 교수를 겸하고 계셨다. 교수님을 통해 앨리의 소식을 들었는데, 그 녀석 천재라고 학교에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가끔 런던에 놀러 올 때면 시간 내서 관광시켜주고 함께 놀았다.

 

다른 한명은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었다. 세인트 마틴에 입학했는데 용케 잘 버티고 졸업해 영국에 눌러앉았다. 어학원에서 지어준 에릭이라는 이름을 지금도 사용하는 녀석이다. 앨리와는 다르게 학습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문제였다. 25년째 영어 실력 중급에 머물러 있는 녀석이다. 성실한 데다 유머 감각이 만렙이라 부족한 영어 실력임에도 너무 웃겨서 이 녀석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친화력도 만렙이라 외국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상하리만치 영어가 늘지 않았다.

 

옛날에는 공항에서 비자 받을 때 학비 완납 증명서가 필요 없었다. 재정 증명 역시 신용카드 보여주면 됐었다. 그렇다 보니 집이 부유하지 않아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학 올 수 있었다. 에릭은 최소 비용으로 유학한 학생이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항상 쉐어를 이용했다. 기숙사 싱글룸 비용이 저렴했는데 그마저도 아깝다고 쉐어만 했다. 파운데이션 코스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는 주말마다 틈틈이 알바도 했다. 이스트본에서 알바를 많이 해 나름 돈도 좀 모아서 올라왔다.

 

런던이 촌동네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물가가 비쌀 것 같지만 방을 쉐어하고 외식을 안 하면 이스트본과 차이가 없었다.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하면 걸어 다녀도 되고, 자전거를 이용해도 되니까 차비도 안 들었다. 생활력이 강하고 정신도 건강한 녀석이라 최소 비용으로 유학이 가능했다. 내가 여행 갈 때면 앨리와 함께 항상 데리고 다니던 동생이었다.

 

가깝게 지내던 다른 동생들도 있었다. 나 보다 한달 먼저 런던으로 올라간 커플이다. 어학원에서 만나 커플이 된 동생들인데, 나보다 한두 살씩 어렸다. 마크와 샐리라는 이름을 쓰던 동생들이었다. 그 동생들은 영국에 정착하려다 실패했다. 영국 생활을 비참하게 마감했던 동생들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00년에 영국에 와서 정착하려고 노력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04년에 한 명은 불체자가 되어 떠났고, 한 명은 워크퍼밋이 거절되어 떠났다. 그 과정이 좀 안타까운데 그때는 그런 일이 닥칠지 몰랐으니 즐겁기만 했다.

 


오후 5시쯤 에릭을 태우고 런던 킹스크로스에 도착했다. Congestion Charge, 교통 혼잡세가 없던 시절이라 도로에 차가 엄청 많았다. 옥스퍼드에서 점심 먹고 출발했는데 런던 시내로 들어오는 길이 험난했다. 오래된 도시라 도로 폭이 좁았다. 왕복 2차선, 4차선 도로가 많고, 그 이상의 도로는 보기 어려웠다. 이런 도로에선 교통 체증이 당연했다. 2003년에 교통 혼잡세가 도입되면서 교통 체증이 많이 해소되었다.

 

세인트 마틴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2베드 플랏이 숙소였다. 기숙사도 있었는데 비싸다고 외부 숙소를 구했다. 지금과는 가격 차이가 크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 학생들의 기숙사는 대부분 저렴했다. 가장 저렴한 싱글룸 6인실이 주 60파운드, 4인실이 70파운드 정도했다. 런던 외 지역은 주 50파운드부터 있었다. 그보다 좋은 방들은 옵션이 있었는데, 화장실 딸린 방은 보통 월 350파운드 전후였다.

 

영국의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시절, 정부에서 대학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직업 교육원을 전문대학으로 바꾸거나 정규 대학에 편입시키는 꼼수를 쓰면서 진학률 높이는데 열을 올렸다. 진학률은 높아져 가는데 기숙사 공급률이 따라오지를 못했다. 부족한 기숙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 리스라는(Block lease) 것이 성행했다. 대학에서 블록 내에 있는 모든 건물을 통째로 임대해서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것도 이젠 옛말이다. 지금은 비싸다.

 

1베드 플랏도 있었지만 1베드는 주로 석박사들이 이용했다. 보통 2베드 이상의 플랏이 많았다. 저렴한 플랏은 2베드 기준으로 평균 월세 500파운드였다. 좋은 플랏은 좀 더 비쌌지만 2베드는 보통 월 5~600파운드였다. 500파운드 2베드에 들어가면 1인당 250파운드라 기숙사 2인실이라는 개념이었다. 지방세 면제, 수도세 면제, 전기와 가스는 학생 할인받으면 얼마 나오지도 않았다. 집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하고 싶으면 3인이 쉐어를 하면 된다. 2개중 하나는 큰 방이다. 큰방 하나를 두명이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가 훨씬 많지만, 집에서 공부할 땐 한명이 거실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됐다. 3명이 쉐어하면 싱글룸 혼자 쓰는 사람이 200파운드, 쉐어하는 사람이 150파운드씩 부담했다. 에릭은 쉐어를 선택했다. 워낙 사교성이 좋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혼자 쓰는 것보다 쉐어가 나을 수 있었다.

 

에릭이 쉐어하면서 딱 한번 화낸 적이 있는데, 중국인과 쉐어할 때였다. 왕이라는 어린놈과 쉐어를 했는데, 안 씻어도 너무 안 씻었다. 참다못해 좀 씻으라고 한소리 했더니 왕이 화내면서 되받아쳤다. “어제 씻었어!!!” 이 소릴 듣고 크게 말다툼을 했다.

 

나도 기숙사를 구해야 했다. 주차 가능한 기숙사가 필요했다. 학교를 차 끌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학교에 주차 공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주차비도 비쌌다. 차는 주말에 놀러 갈 때나 코리아 푸드에 장보러 갈 때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차가 없었으면 진작에 기숙사 정해서 들어갔을 것이다. 차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에릭처럼 학교에서 제공하는 플랏을 이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블록 리스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뉴몰든에 머물면서 기숙사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한국인이 많은 곳으로 가면 사고 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았다. 법원, 경찰서에 끌려가는 사람들 통역하면 용돈 벌이가 될 것 같았다. 통역은 시급이 굉장히 높은 알바였다. 통역이 필요한 지자체에서 돈을 줬다. 지자체 홈페이지 통역풀에 내 정보를 등록하면 필요할 때 연락이 왔다.

 


뉴몰든에서 한국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몰랐다. 04카페에 보면 하루가 멀다 하게 사기당한 글들이 올라왔는데, 내가 당한 게 아니어서 그런지 경각심을 갖지 못했다. 뉴몰든에서 2주간 머물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 그중엔 사기꾼도 세명 있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에게 사기 치려 했던 사람도 있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진짜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살면서 머물러 본 동네 중에 최악의 동네가 뉴몰든이었다.

 


 

추천1 비추천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아이피 (175.♡.103.83) 작성일

제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주변에 계신 분들이 다 제대로 된 영어이름을 가지고 있었군요 ㅎㅎ

Dave0723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아이피 (210.♡.64.141) 작성일

어학원에서 쓰던 이름들이에요. 대학 들어가면 그 이름 쓰기는 어렵죠. 한국인 이름은 받침이 있어서 어려운데, 저도 이름에 받침이 있어서 가운데 한글자만 사용했어요. 풀네임은 외국인들이 발음을 못하니까 가깝게 지내려면 아무래도 부르기 쉬운 글자 하나만 사용하는 것이 좋죠^^

Total 2,276건 1 페이지
영국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열람중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7 1 2026-02-22
2275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3 1 2026-02-05
2274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3 1 2026-02-04
2273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4 1 2026-02-03
2272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5 2 2026-02-02
2271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3 1 2026-02-01
2270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1 1 2026-02-01
2269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4 1 2026-01-30
2268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9 1 2026-01-29
2267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8 1 2026-01-28
2266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9 1 2026-01-27
2265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8 1 2026-01-27
2264
옛날 일기 댓글4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97 1 2026-01-27
2263 no_profile 자몽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24 0 2025-09-07
2262 no_profile 소월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36 1 2024-05-04
2261 no_profile 소월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17 0 2024-04-26
2260 no_profile 그런가보다하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25 1 2024-04-20
2259
뉴캐슬 댓글2
no_profile viiii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64 0 2024-01-05
2258 no_profile 낭만신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46 0 2024-01-02
2257 no_profile SONGSING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56 3 2023-07-25
게시물 검색
내가 쓴 글 보기
영국이야기
공지사항
이런저런이야기
영국일기
영국사진앨범
영사 사진전 수상작
요리/맛집/여행
영사칼럼
영사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