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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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을 시간에 뉴몰든에 도착했다. 2주간 머물기로 하고 200파운드를 지불했다. 잠만 잘 건데 방이 너무 컸다. 트윈룸이었다. 싱글룸이 월 200~250파운드였는데 방을 잘못 잡았다. 뉴몰든 기차역 인근에 싱글룸이 없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이 있긴 했는데 그냥 가까운 곳을 택했다.
신혼부부가 사는 2베드 플랏이었다. 생후 18개월쯤 돼 보이는 아기와 만삭의 임산부가 있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이제 30살인데 몸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그 나이에 벌써 비만이었다.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자리에 앉았다. 뜬금없이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대답하기 싫었지만 간단하게 답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이 사람이 나에게 사기 치려던 사람이었다.
난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기가 먼저 호구조사를 시작하니까 내가 말머리를 돌리려고 뉴몰든에서 무슨 일 하시냐고 물었다.
유학원과 피시방을 운영한다고 소개했는데, PC방은 은행에 압류된 상태였다. 당시 영국의 인터넷 상품은 512kb, 1메가, 그리고 가장 비싼 2메가가 전부였다. 영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15%정도 됐었을 때였다. 어찌 보면 잘 될 것 같은 업종이지만 저런 속도로는 온라인 게임이 거의 불가능해서 망할 수밖에 없는 업종이기도 했다. 뉴몰든에 PC방이 두개 있었는데 둘다 문 닫았다. 유학원은 가지고는 있는데 학생이 안 온단다. 백수라는 말을 너무 길게 늘어놓았다.
그 집의 월세가 580파운드였다. 트윈룸을 400파운드에 내놓고 자신은 180파운드만 내고 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생활이 그때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방안에서 노트북으로 기숙사 정보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풀 태우는 냄새가 났다. 대마초 냄새였다. 어학원에 있을 때 남미에서 온 학생들이 대마를 가져와 학교에서 피워댔다. 영국에선 대마를 판매하는 사람들만 처벌하지 피우는 사람은 처벌하지 않았다. 사람들 말로는 대마 피우는 사람들까지 처벌하면 영국 경찰의 절반을 처벌해야 한단다. 그만큼 대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에 아기도 있고, 임산부도 있는데 저래도 되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방 빌려주면서 생판 남인 사람도 있는데 이건 무슨 경우인가? 은행 압류 풀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 대마 살 돈은 있었나? 첫날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런던에 먼저 올라온 동생들이 레인즈 파크에 살고 있었다. 바람 쐴 겸 동생들과 드라이브하며 런던 시내를 돌았다. 영국의 여름은 날씨가 좋은 편이었다. 하늘도 맑고 시원한 데다 해가 길어 놀기 좋은 계절이었다.
동생들이 일요일에 교회 가자고 꼬드겼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인 교회 구경이나 할 겸 나가봤다. 한인 사회에서 가장 큰 교회라는데 이 교회의 설립 스토리가 재밌었다. 런던 시내에 가장 큰 한인 교회가 있었다. 1980년대에 교인들이 모여서 목사 없이 교회를 열었다. 나중에 한국에서 목사가 왔고, 날이 갈수록 교인들이 늘어나 가장 큰 교회가 되었다.
90년대 중반, 새로운 목사님이 오시게 되었는데, 이 목사님이 조금 독선적인 면이 있으셨다. 고집도 센 분이라 한번 결심한 일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멈추지 않으셨다. 교인들이 일으킨 교회여서 목사라 할지라도 함부로 하시면 안 됐는데 선을 넘으셨다. 교인들이 두 패로 갈라졌다. 목사님을 쫓아내자는 쪽과 그럴 수 없다는 쪽으로 갈라져 투표하기에 이르렀다. 투표 결과가 흥미로웠다. 정확하게 50:50이 나왔다. 재투표를 진행하려는데 목사님이 말리셨다. 자신이 나갈 테니 교인들이 서로 미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교회를 떠나셨다.
교인 절반이 목사님을 따라 나갔다. 그분들이 뉴몰든 인근에 교회를 열었는데 워낙 한인들이 많은 동네여서 금세 영국에서 가장 큰 한인 교회가 되었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목사님을 처음 뵀는데, 진짜 고집이 세셨던 모양이다. 사람 성격 쉽게 안 바뀐다고 했던가? 전도사 형님한테 들었는데 여전하시단다. 뉴몰든에 유학원이 워낙 많았던 때라 교회에 유학원 원장과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나보다 4살 많은 전도사 형님이 계셨는데, 그 형님이 기숙사 찾는 거 도와주신다고 월요일에 유학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고마운 형님이었다. 하지만 그 형님도 누굴 도와줄 형편은 아니었다. 유학원 원장이라는 사람이 나와 동갑이었다. 전도사 형님과 같은 교회 사람인데 사람들 말 들어보면 완전 양아치였다. 사기꾼 기질이 보였는데 5년 뒤에 학생들 돈 들고 잠적했다.
그 원장이라는 놈이 어학연수 중에 같은 학교에 있는 부잣집 딸을 임신시켰다. 그 여자도 같은 교회에 나오고 있어서 일요일에 봤는데, 그 양아치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얼굴에 천사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여자인데 어쩌다 저런 놈한테 걸렸는지 안쓰러웠다. 여자 집에서 결혼할 때 2억원을 줬다. 그 돈으로 유학원 차리고 학생 비자에서 사업 비자로 갈아타고 집도 샀다. 그 양아치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다. 옛날에는 한국에서 알바 6개월 하면 어학연수비 모아서 나올 수 있었다. 재정증명이 없었으니까...
그 시절 한국에서 강남 3구 제외하고 1억이면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영국에서도 7만 파운드면 집을 살 수 있었다. 2억 줄 정도면 나중에 물려받을 재산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와이프한테 잘해도 시원찮을 판에 어학연수 온 여학생과 바람피우다 들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도사 형님이 그 유학원을 통해 워크퍼밋을 받았다. 천운이었다. 유학원을 통해 워크퍼밋 받기가 쉽지 않을 텐데 본인도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웃긴게 뭐냐면, 월급이 없었다. 학생 한명을 유치하면 유학원이 받을 커미션을 원장과 전도사 형님이 반씩 나누는 기괴한 계약을 한 것이다. 형님한테 들으니 유학원 커미션이 학비의 20%~30%라는데 보통 30% 주는 학교를 많이들 권한다고 한다. 그런 학교는 36주 3600파운드 정도 했으니까 한명 보내면 보통 1200파운드 정도를 커미션으로 받는다.
큰 유학원들에게 학생들을 거의 다 빼앗기고 있었다. 작은 유학원이 큰 유학원 상대로 경쟁하려면 자신들이 받을 커미션 일부를 추가할인이라는 명목으로 학생에게 주어야 했다. 그런 방식은 결국 망한다. 수익이 줄어들자 학생 돈에 손대게 되고, 그러다 돌려막기 시작하고, 감당 못 할 수준에 이르면 돈 들고 튄다. 다들 이렇게 망했다. 전도사 형님이 계셨던 유학원이 그 상황이었다.
돈이 부족하자 그 양아치가 전도사 형님께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안 빌려주면 경영 악화로 유학원 문 닫아야 한다는 은근한 협박을 곁들였다. 전도사 형님도 워크퍼밋 갈아탈 자신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빌려주는 일이 반복됐다. 전도사 형님도 형편이 안 좋은데 시간 내서 날 도와주셨다. 형님 말로는 어차피 할 일 없었다는데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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