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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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교회 정신병자들이 집요하게 스토킹했다. 오후 내내 시달리다 결국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경고하고 나서야 스토킹이 멈췄다.
교회 나오라고 자꾸 전화해서 오후에 잠깐 들렀는데, 사이비 교주 놈이 일해서 버는 돈 다 가져오라는 설교 하고 있었다. 무시하고 나왔더니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교회 나오라고 강요했다. 예배시간에 성경 말씀은 하나도 없고, 돈 이야기만 했다. 영국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 디자이너가 있단다. 그 사람은 1년에 보석 한두 개만 디자인하는데, 보수로 수억 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 사람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보수로 받은 수억 원을 모두 교회에 바친단다. 그러면서 양팔을 크게 휘둘러 원을 그리며 말했다. “여러분도 헌금 많~이 하세요.”
뉴몰든에 지옥 갈 놈들이 목사랍시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마초 애연가도 있었고, 와이프 폭행하다 이혼당한 목사, 여신도 옆구리에 끼고 술 마시는 목사, 자본주의를 맛보더니 목사님에서 회장님으로 탈바꿈한 인간들까지 다양했다.
오후 늦게 뉴몰든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파운틴펍 옆 골목이었는데, 혹시 또 이상한 사람한테 걸릴까 봐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민박집을 구했다. 01년 뉴몰든 민박집 숙박비가 10파운드였다. 아침까지 주는데 10파운드였다. 진작 알았으면 팬트리에서 안 잤지... 2층 침대가 놓인 4인실이었다. 침대방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어젯밤에 깨달아서 불만은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목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셨다. 그 시절에 목사 진짜 많았다.
스토커들 때문에 저녁을 못 먹었다. 라면이라도 먹으려고 주방으로 갔더니 주인아저씨가 맨밥에 올리브 열매를 반찬 삼아 식사 중이셨다. 반찬이 그것뿐이었다. 건강식을 즐기는 분인가 싶었다. 식당이 있었는데 왜 좁은 주방에서 드시는지 모르겠다. 낮에 있었던 교회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그 목사 알고 있단다. 다른 교회에서 부목사 하던 놈인데, 빈 교회가 하나 났다고 하니까 바로 뛰어가서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부목사로 와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단다. 자신의 명성을 팔아 장사하려는 놈이라는데, 그분이 명성 있는 분인지는 모르겠다.
민박집이라 투숙객이 많은데 화장실은 하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난 주인아저씨가 화장실을 독점하셨다. 화장실 앞에 투숙객들이 줄 서서 기다렸다. 안에서 뭘 하시는지 30분 이상 기다려도 안 나오셨다. 주인아주머니가 빨리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쌍욕을 퍼부으셨다. 간밤에 건강식은 주인아주머니께서 밥을 안 차려주셔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드시는 것이었다. 밥을 왜 안 차려주시는지 이해가 됐다. 그 집에서 나왔다.
투자 이민 오신다는 분과 함께 변호사를 만나러 윔블던으로 갔다. 홍콩 출신 변호사였는데, 사무실이 전문학교 안에 있었다. 그 변호사의 고객 중에 학교 설립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본업은 변호사인데, 투잡으로 학교장을 겸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에서 대학 진학률 높인다고, 위탁 교육을 장려하고 있었다. 런던대에서 일부 학과를 그 학교에 위탁했는데, 학비는 1년 1200파운드였다. 졸업장은 런던대에서 나온다고 홍보했다. 학업 목적보다 졸업장 따려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 같았다.
상담 후 변호사가 준비하라는 서류를 갖추기 위해 뉴몰든에 있는 은행으로 갔다. 돈만 많으면 관광비자로 입국해 은행 계좌 개설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유럽 부자들의 자금 세탁은 영국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Lloyds Bank였던가? 1층에서 희망하는 투자 금액을 말했더니 지점장이 내려와 자기 사무실로 안내했다. VVIP 대우받을 만한 금액이었다. 그분 성씨가 김이어서 Mr.Kim으로 불렀다. 김 선생님 손녀들이 8살과 9살인데, 손녀들 교육 때문에 이민 오시려는 분이었다. 다른 이유 없이 오직 손녀들을 위해 오시는 분이었다.
은행 지점장이 자본주의에 특화된 노예였다. 비서가 한국인들이 자주 즐긴다는 커피 믹스를 타왔다. 지점장이 그 비서에게 눈으로 욕하는 것을 보았다. 지점장이 커피를 빼앗으며 김 선생님은 이런 거 드시면 안 된다면서 자신이 직접 커피를 탔다. 빼앗은 커피 믹스는 나에게 주었다. 난 그 새끼가 싫었다.
투자 계약서 작성하고, 투자금 예치하고, 서류 챙기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다음날 또 만나 한인 부동산을 찾았다. 뉴몰든에도 부촌이 있었다. Hidden rich area라고 불리는 곳인데, 학군도 좋고 주변 환경이 좋아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다.
한인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했기 때문에 딱히 내가 도울만한 일은 없었다. 명문이라고 소문난 사립학교를 찾아 입학 절차를 상담받았다. 최종적으로 변호사와 일을 마무리 지었다. 변호사가 이민 올 김 선생님 가족들의 서류를 작성해 주었다. 그것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 영국대사관에 신청하면 끝이다.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이틀간 통역비로 천파운드를 주셨다. 그렇게 안 주셔도 되는데 상당히 쿨한 분이셨다. 성당에 들러 자선 헌금으로 절반을 내놓고 왔다.
새로 구한 민박집은 킹스턴 로드에 있었다. 거기도 1박 10파운드에 조식 포함이었다. 이번 방은 1인실이었는데, 팬트리보다 조금 넓은 방이었다. 싱글 침대가 하나 있고, 그 옆에 30cm 정도 공간이 남는 정말 작은 방이었다. 그래도 팬트리가 아닌 게 어디냐 싶어 일단 들어갔다. 민박집 부부는 관광비자로 오신 분들이었다. 9살 정도 돼 보이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공립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에서는 부모의 비자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 요구하는 것 자체가 규정 위반이다. 학교는 주거지 확인만 할 뿐이었다. 단속은 홈오피스에서 하는데, 적발되면 강제 추방 및 재입국 금지 처분을 받는다.
그때는 모든 것이 허술했다. 전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단속하려면 사람이 나와야만 했는데, 그럴 인력이 없어서 문제였다.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학교, 지자체, 경찰, 병원 등이 아이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유하도록 법안이 마련된 해가 2003년이었다.
이런 분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적발될까 봐 가슴 졸이며 사는 것도 본인들이 선택한 삶이니까 타인이 뭐라 할 필요는 없다. 상식을 깨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팬트리도 방이 될 수 있고, 관광비자로도 취업할 수 있다. 관광비자로 은행도 오픈할 수 있었다. 은행은 비자를 검사하는 기관이 아니다. 굳이 여권 들고 갈 필요는 없다. 국제운전면허증, 공과금 고지서나 주택 임대차 계약서의 이름과 주소지만 확인돼도 계좌를 열 수 있었다. 하지만 민박집 부부는 은행을 열지 않았다. 아마 모르고 계셨던 것 같다.
은행이 없으니 현금을 집에 보관하고 계셨다. 내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그분들이 힘들게 번 돈을 모두 털렸다. 범인은 가족이었다.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있었다. 여동생이 만삭의 임산부였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웠는지 같은 집에 방 하나를 내주고 함께 살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제부라는 사람이 쓰레기였다. 재활용도 안 되는 폐기물인데, 그걸 사람대접 해줬더니 언니 부부의 전 재산을 털었다. 웃긴 건 여동생이 주범이라는 것이다.
댓글목록
영국보틀님의 댓글
빼앗는 커피를 왜 글쓴님에게 ㅠㅠ ㅋㅋ
정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본성을 드러내려고 외국나온것같은 사람들 같군요 도와준사람 등쳐먹고 순수한 사람들 틀어막고 양심의 가책은 하나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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