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31)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스트레스 날려버릴 땐 록만큼 좋은 장르가 없다. 시내에서는 소음 때문에 안된다는데, 어디서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늦은 밤 공원에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일렉기타와 스피커를 챙겨 리젠트 파크로 향했다. 밤 10시 반쯤 됐을까? 게이트는 열려있는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가로등도 없었다. 드문드문 있기는 했는데,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지금은 가로등이 좀 생긴 것 같은데, 옛날에는 정말 암흑세계였다. 밤에 공원 가지 말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어둠 속을 혼자 걸으니 조금 떨렸다. 포터블 스피커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들렸다.

<지금은 가로등이 많이 생겼지만, 옛날에는 거의 없었다.>
매일 아침 달리는 코스여서 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둠 속에서는 방향 감각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 멀리 가로등 하나가 보였다. 불빛 하나만 바라보고 걸었다. 가로등 아래 도착해보니 공원 안, 이너서클(inner circle)이었다. 그곳에는 가로등이 좀 있었다. 이너서클을 따라 걷다가 조경용 조명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일본식 정원이(The Japanese Garden Island) 보이는 곳인데,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 귀신 나올 것만 같았다. 더 돌아다녀봤자 자리 잡기 힘들 것 같아 그냥 그곳에서 멈췄다.
스피커 볼륨을 올렸다.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데시벨이 무슨 상관인가? 어떤 곡으로 시작할까, 잠깐 고민했다. 이스트본 밴드에 있을 때, 리더였던 제이크가 발라드를 헤비메탈이나 록 버전으로 편곡하는 모습을 자주 봤는데, 재밌어 보여서 나도 따라 했다. 내가 좋아하는 해철 형님의 명곡 ‘그대에게’를 헤비메탈로 만들었다.

<누군가가 AI를 사용해 헤비메탈 곡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놨다. 제법 잘 만들었다.>
그대에게, Lonely Night, Livin’ On A Prayer, You Give Love A Bad Name, It’s My Life까지 쉬지 않고 연달아 불렀더니 지쳤다. 한 곡만 더 부르고 집에 갈 생각으로 I Don’t Want To Miss A Thing을 목청 터지게 불렀다. 속이 다 시원했다. 역시 스트레스 풀 때는 록이 최고인 것 같다. 포만감 섞인 한숨을 내쉬는데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경찰이었다. 영국 경찰은 왜 자꾸 인적 드문 곳에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공원은 공공장소라 출입금지 같은 제약은 없을 것 같은데, 저 양반이 왜 왔는지 의아했다. 노래하느라 기운이 다 빠져서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I don’t speak English.”
“Bullshit!!!”
“oops,ㅋㅋㅋ”
can’t보다 don’t을 더 자주 쓴다. 영어 못하는 척할 때는 can’t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웃으면서 여기서 뭐하냐고 물었다. 사실대로 말했다. 시내에서는 소음 신고 때문에 록을 부를 곳이 없어서, 사람 없는 밤에 여기서 부른다고 했다. 캠든에 록을 부를 수 있는 곳이 있다면서, 자길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이너서클에 경찰차가 보였다. 뒷좌석에 앉았다. 공원도 순찰 구역이냐고 물어보니, 밤에 공원은 강력 범죄 다발지역이라 항상 순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밤에는 위험하니 공원에 오지 말란다. 한국보다 치안이 확실히 안 좋은 것 같다.

<유학 생활하는 동안 더블린 캐슬에서 공연을 많이 했다.>
공원 1시 방향에 게이트가 있는데, 그곳으로 나가면 캠든이었다. 자정이 다 됐는데, 어딜 가려는지 궁금했다. 게이트를 나와 200m 정도 갔을까?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어보니, 간판에 ‘The Dublin Castle’이라고 쓰여있었다. 이름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는데, 더블린이라는 지명이 유명해서 그러려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그냥 펍이 아니라 클럽이었다. 공연이 끝났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을 피해 벽으로 붙었다.
자연스레 벽으로 눈길이 갔다. 영국의 록스타 Rolling Stones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퀸,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록밴드의 포스터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캠든 출신 MADNESS, 브릿팝의 황제 오아시스도 보였다. 그중에 특히 내 눈길을 끄는 공연 포스터가 있었는데, 록밴드 콜드플레이였다.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스트본에서 밴드 친구들과 놀 때, 친구들이 더블린 캐슬에서 공연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친구들이 콜드플레이를 부러워했다.

<옛날 이름이 Barfly Camden이었는데, 더블린 캐슬과 함께 인디 록밴드의 성지로 불렸다.>
‘더블린 캐슬’은 인디 록밴드의 성지였다. 가난했던 무명 밴드들이 돈을 벌기 위해 공연할 수 있는 클럽이면 어디든 갔는데, 무명일 때 받아주는 클럽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받아주는 작은 클럽에서 푼돈 벌며 시작했는데, 그곳이 ‘더블린 캐슬’이었다. 라이벌 클럽으로 ‘Barfly Camden(현 The Camden Assembly)’이 있는데, ‘Electric Ballroom’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클럽이었다. 이 클럽들이 모두 캠든에 있어서, 어찌 보면 캠든 자체가 인디 밴드의 성지일 수도 있다. 캠든에서 인기를 얻으면, 시내 빅 클럽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콜드플레이도 그렇게 성장했다.
인디 밴드의 성지에 오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함께 들어온 경찰을 찾았는데, 클럽 사장과 친한 모양이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사장에게 날 가리키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사장이 나에게 다가와 오디션 보겠느냐고 물었다. 그 작은 클럽에도 오디션이 있었던 모양이다. 밴드 친구들이 이스트본에 있는데, 친구들 데려와서 오디션 봐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사장이 편한 시간에 전화하라고 명함을 주었다. 기쁘게 명함을 받아들고 나왔다.
그 경찰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며 이름을 물었다. 잘되면 자길 잊지 말고 찾아달라며 이름을 말해줬는데, Jason Statham이었다. 25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제이슨과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사람인연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또 도움을 받았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이스트본에 있는 제이크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할까 하다가,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문자로 대신했다. 제이크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크게 웃었다. 야밤에 공원에서 혼자 노래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노래 부르고 싶을 때 언제든 오라는데, 일단 오디션 스케줄부터 잡았다. 오디션 일정까지만 내가 나서서 클럽과 대화하고, 오디션 후에는 제이크에게 맡겼다.

<콜드플레이의 학생 때 모습. 저 친구들의 영향으로 대학생 밴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오디션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클럽에 소속된 밴드가 4~50개 정도 있었다. 클럽에서 만든 스케줄에 맞춰 공연하는데, 일주일에 밴드 10개 팀 정도가 공연했다. 거의 5주 간격으로 공연 일정이 잡혔다. 우리의 첫 공연 일정은 11월 첫째 주 금요일 밤이었다. 다시 밴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기분 좋았다. 밴드 친구들도 자신들이 원했던 더블린 캐슬에 입성한 것을 기뻐했다. 우리가 학생 신분인 점을 고려해 주말에만 공연 일정을 잡아줬는데, 어쩌면 콜드플레이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콜드플레이는 UCL 학생들이 만든 록 밴드였다. 콜드플레이가 대박 난 해는 2000년으로, 1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런던에 와서 새로운 인연이 많이 생겼다. 학교 신방과에(Media & Communications) 성격 좋은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누구든 만나면 5분 만에 친구로 만드는 능력자였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인데, 성격도 좋은 데다가 웃기기까지 해서 한국인, 외국인 안 가리고 친구가 많았다.
이름 끝 자가 ‘연(Yeon)’인데, 반모음 1개와 모음 2개가 들어가 있었다. 이런 이름은 외국 친구들이 발음하기 어렵다. 본인이 발음을 알려 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절대 읽을 수 없는 이름이다. 한국인은 로마자 표기법에 익숙해서 한 번에 읽지만, 외국 친구들에게 읽어 보라고 하면, 이언, 이은 이런 식으로 읽는다. 게다가 가운데 철자도 있으니 풀네임을 부르기는 더욱 어려웠다. 외국 친구들이 부르기 편하게 호칭을 ‘Yuny’(유니)라고 썼다.
유니와 함께 유학 온 친구가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유치원 다닐 때부터 친구라는데, 엄청난 미인이었다. 그 아이 때문에 한동안 심란해서 힘들었다. 내 유학 생활 최대 위기를 안겨준 아이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쓴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