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은 ‘와인 박물관’이었다…최고가 샴폐인 대체 얼마길래 [전형민의 와인프릭] > 요리/맛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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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은 ‘와인 박물관’이었다…최고가 샴폐인 대체 얼마길래 [전형민의 와인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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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중경삼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191.154) 댓글 0건 조회 676회 작성일 23-09-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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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년 전인 1912년 4월10일, 한 여객선이 영국 남부 항구 도시 사우스햄턴을 떠나 미국 동부 뉴욕으로 향하는 항해를 시작합니다. 여객선의 배수량은 5만2310톤, 거함거포주의가 한창이던 30년 후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가장 큰 전함의 배수량과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배죠. 정원은 3327명, 첫 항해에는 2200여명이 탔습니다. 승객 대다수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가는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여객선은 출항 후 이틀에 걸쳐 프랑스 쉘부르와 아일랜드 퀸즈타운에서 보급을 마치고 대서양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3일 만인 4월14일 저녁, 빙산과 충돌로 선체에 구멍이 생기고 2시간 40분 만인 15일 2시20분 침몰합니다. 당시 신기술인 방수격벽을 16개나 설치해 ‘침몰하지 않는 배’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별명이 무색한 허망한 침몰이었죠. 이 사건은 1400여명이 사망한 역대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짐작하셨듯이 1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이자 셀린 디온이 부른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으로 잘 알려진 타이타닉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존 함선 R.M.S. 타이타닉은 당대 최고의 호화 유람선이었습니다. 당연히 걸맞는 식음료가 함께 실렸습니다. 와인은 빠질 수 없는 메뉴였고요. 오늘 와인프릭은 타이타닉에 얽힌 와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912년 4월16일자 타임즈 디스패치의 표지.사진 확대
1912년 4월16일자 타임즈 디스패치의 1면. 타이타닉이 빙하와 충톨했다는 내용이 메인으로 실렸다.
이게 맞아? 1등석 표값만 1억2000만원

타이타닉은 당대 최고의 호화 유람선이라는 명성답게 승선권의 가격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현재의 가치로 환산한다면 가장 호화로웠던 1등실(First class)은 총 416실이 있었는데, 룸 스타일과 인원에 따라 최소 420만원에서 1억2000만원에 달했습니다. 2등석(162실)은 1인당 150만원, 가장 저렴한 3등석(269실)도 40~10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타이타닉의 항해 예정 기간은 총 6일 남짓이었습니다. 호텔 숙박비라고 하더라도 1박에 1700만원을 웃도는 초호화 호텔이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주당(酒黨)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시설, 클럽 라운지가 있었습니다. 타이타닉 1등석 승객들은 오전 8시30분부터 저녁 11시30분까지 열리는 전용 라운지에서 제한 없이 음료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대 비행기 승객 시스템 대부분이 과거 여객선 승객 시스템에서 따왔다는 것을 떠올리면, 타이타닉의 퍼스트클래스(1등석)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될까요. 당연히 명성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고품질의 와인이 준비됐을테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111년 전 당시 선사(船社)였던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의 공식 보급 리스트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다만 선박과 관련한 여러가지 기록들을 통해, 타이타닉의 첫 항해에 와인 1500병과 샴페인 63케이스(1case=12병) 샴페인잔 1만5000개 등이 실렸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타이타닉사진 확대
실제 RMS 타이타닉호의 출항 직후 모습. 타이타닉은 당시로서는 물론, 30년 후 2차 세계대전까지도 초거대 함선이었다.
와인 박물관에 가까운 셀렉션

당시 침몰로부터 살아남은 승객들의 인터뷰와 보급품 일부를 공급했던 와이너리와 상점의 기록, 침몰 73년 만인 1985년 건져올린 잔해 속에서 와인의 종류가 일부 확인됐습니다.

뉴욕에서 현재까지 주류 판매업을 영위하고 있는 Acker, Merrall & Condit은 타이타닉호에 와인 50케이스를 공급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당시 상세한 품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카고에서 McLaughlin’s Coffee로 알려진 당시 Wakem & McLaughlin, 역시 타이타닉에 와인 43상자와 비스킷 25상자를 공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기록은 살아남은 1등석 승객이 회고한 침몰 전야(1912년 4월14일 밤) 코스 요리 메뉴 입니다. 릭 아치볼드와 다나 매컬리가 저술한 ‘타이타닉에서의 마지막 만찬(Last Dinner on the Titanic)’에 따르면, 전채 요리와 굴에는 부르고뉴 블랑과 샤블리, 크림 수프에는 마데이라와 셰리 같은 드라이 주정강화 와인, 연어 요리에는 독일 모젤 지방의 리슬링이 각각 페어링 됐습니다.

메인 요리의 경우 재료에 따라 각각 다른 와인이 제공됐습니다. 닭고기라면 보르도 레드, 양고기나 소고기, 오리고기에는 부르고뉴 피노누아와 보졸레가 서빙됐다고 합니다. 디저트는 푸아그라와 푸딩, 젤리, 아이스크림 등이었는데, 뮈스까델과 소떼른토카이 와인이 곁들여졌습니다.

현대의 와인 애호가들이 보더라도 혀를 내두를 만한 완벽에 가까운 페어링과 다양한 와인 셀렉션입니다. 이쯤되면 진짜 초특급 호텔 못지 않은 가격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타이타닉 1등석 메뉴판사진 확대
실제 타이타닉 1등석 메뉴판. 침몰 전날인 1912년 4월14일 저녁 메뉴다.
발굴된 3.6억원짜리 샴페인

현재까지 타이타닉에 실린 것으로 구체적인 상표와 브랜드가 알려진 와인은 총 3개 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려진 셋 모두 샴페인입니다. 어쩌면 첫 항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샴페인이 유난히 많이 실리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번째 샴페인은 2012년 타이타닉 출항 100주년을 기념해 당시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한 한정판 4000병을 출시했던 앙리 아벨레(Henri Abele) 입니다. 현재는 아벨레 1757(Abele 1757)로 리브랜딩했습니다. 1757년에 설립돼 현존 샴페인 하우스 중 세 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인데요. 오늘날 샴페인 공정에서 빠질 수 없는 데고르주망(Degorgement·샴페인에 생긴 찌꺼기, 효모 침전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처음 고안해낸 곳입니다.

나폴레옹이 사랑했다는 모엣 샹동(Moet & Chandon)도 침몰 73년 만인 1985년, 심해 탐사팀이 잔해들 사이에서 코르크를 발견하면서 타이타닉에 실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때 탐사팀은 온전한 와인병을 몇 개 건지기도 하는데요. 1907 빈티지 하이직 샴페인(1907 Heidsieck & Co. Monopole Gout Americain)입니다. ‘미국의 맛’이라는 Americain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제품은 일종의 한정판으로 당시 스타일대로 좀 더 단 맛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타깝게도 회수한 샴페인들은 익명의 아시아 부자에게 미공개 가격으로 팔리면서 영영 맛볼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1998년 또 다른 침몰선(스웨덴 국적 Jonkoping호)에서 빈티지까지 같은 샴페인 수백병이 인양돼 판매됐습니다. 가격은 19만~27만달러(약 2억5000만~3억6000만원) 정도입니다.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누군가에겐 그 희귀성과 역사적 가치로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1907 하이직 샴페인사진 확대
실존하는 1907 빈티지 하이직 샴페인과 인증서. 타이타닉과 또 다른 침몰선 Jonkoping호에서 건진 것과 같은 샴페인이다. [사진=auctions.wineauctionroom.com]
100년 전 타이타닉이 와인 업계의 미래 제시?

재밌는 것은, 와인 전문가들이 실제로 맛본 바닷속에서 인양한 샴페인은 놀랍게도 마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생생했다는 점입니다. 와인 업계에서는 덕분에 와인의 숙성·보관과 관련한 새로운 장이 열릴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보통 오래된 와인은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기 때문에 일종의 수집용으로 봐야한다는 게 업계의 통설입니다. 그런데 깊은 바닷속에서 자연적으로 보관된 경우, 오히려 완벽에 가까운 보관이 가능하다는 가설이 세워집니다. 전문가들은 5℃ 이하의 일정한 저온, 일정한 압력, 어두운 주변 환경이 와인이 천천히 숙성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에 가깝다고 말하죠.

실제로 여러 와이너리들이 이 가설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Veuve Cliquot)는 300병의 샴페인을 바닷속에 담궈 보관하는 ‘Cellar in the Sea’ 실험을 2016년부터 진행 중입니다. 향후 40년 간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스페인 리아스 바이사스(Rias Baixas DO)의 라울 페헤즈(Raul Perez) 역시 2003년부터 양조한 알바리뇨(Albarino) 와인 일부를 수중에서 숙성시킨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에 앞장서는 신세계 와이너리들도 수중 숙성에 달려들고 있습니다. 물(Aqua)과 떼루아(Terroir)를 결합한 합성어인 아쿠아오아(Aquaoi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나파 밸리의 미라 와이너리(Mira Winery)가 대표적인데요. 미라의 일반 저장고에서 숙성한 까베르네 소비뇽은 병당 55달러에 판매되는 반면,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에서 3개월 동안 수중 숙성된 까베르네 소비뇽은 500달러 이상에 거래됩니다.

와이너리측은 ‘2009 빈티지를 비교한 결과, 수중 숙성한 와인이 좀 더 잘 숙성됐고 먹기 편한 스타일’이라고 홍보합니다. 결국 100여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이 현재의 와인 업계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100년 후 인류는 바닷속 숙성 와인을 당연하게 마시게 될지도요.

뵈브 클리코사진 확대
뵈브 클리고가 공개한 수중숙성한 샴페인과 그렇지 않은 샴페인. [사진=뵈브 클리코]
인생은 축복이니 낭비하지 말라

영화 타이타닉에서 로즈의 초대로 1등석의 식사 자리에 나타난 잭은,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 로즈 어머니의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에 만족하느냐’는 다소 무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네, 만족합니다. 필요한 것은 다 가졌거든요. 숨 쉴 공기와 그림 그릴 종이도 있죠. 더 행복한 것은 하루하루를 예측할 수 없고, 어디서 누굴 만날지 모른다는 거죠. 예전에는 다리 밑에서 잤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배에서 여러분과 샴페인을 들잖아요. 인생은 축복이니 낭비하긴 싫어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죠. 어떤 일이 일어나든 대처하는 법을 배워요. 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축복과 같은 지금을 낭비하는 것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현재에 감사한 삶을 살겠다는 멋진 마음가짐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하고 로즈와 나무 판자 하나에 의지해 버티면서도 잭은 로즈에게 ‘스스로가 원하는 가치있는 삶을 살라’고 조언합니다. 이후 구조된 로즈는 잭의 조언을 따라 이름을 바꾸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은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R.M.S. 타이타닉과 거기에 얽힌 와인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혹시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고민중인가요? 그렇다면 영화 타이타닉과 와인 한 잔은 어떨까요? 영화가 끝날 때 즈음 스스로 원하던 선택을 하게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전형민의 와인프릭사진 확대

*타이타닉 앞에 붙는 R.M.S.는 Royal Mail Ship의 약자 입니다. 타이타닉은 당대 최고의 여객선이자 영국 왕실의 우편선(연락선)이기도 했습니다.

*출처가 표기되지 않은 사진들은 출처가 모호하거나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straitstimes

- joysjoyofwine.blogspot

- thisdayinwinehistory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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