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펍 안의 주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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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가야되는 곳 중 하나가 영국 전통 술집으로 통하는 '펍(Pub)'이라고 할 수 있다. 런던에 살면서 지인들, 회사동료들과 퇴근 후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자주가는 곳이기도 하다. '퍼블릭하우스(Public House)'의 줄임말인 '펍'은 말 그대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대중의 공간이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한다.
독일의 글로벌 시장분석 전문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영국 전역에 4만5천개 이상의 펍이 있다고 한다. 영국에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수를 모두 다 합쳐도 3천개가 안 되는 걸보면, 펍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중에는 겉모습은 여느 펍과 다르지 않지만 Thai Kitchen, Thai Food라고 적어두고 메뉴판에는 팟타이, 나시고렝 등 태국음식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른바 'Thai Kitchen in a Pub' 모델이다.
펍 주인은 술과 공간을 책임지고, 주방을 태국 음식 운영자가 임대해 음식을 만드는 구조이다. 술집과 식당이 서로의 장점을 활용해 협업하는 방식인데, 덕분에 현지인들은 기네스 한 잔과 함께 제대로 된 태국음식을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전통적인 펍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색적인 태국식당 인테리어가 나오는 곳도 있어서 숨겨진 태국 맛집을 찾아가는 재미도 더한다.

왜 영국 펍과 태국 음식의 협업 구조가 많을까? 농식품수출정보(kati.net) 해외시장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2002년부터 전 세계에 태국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타이 레스토랑 컴퍼니(Global Thai Restaurant Company)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전 세계에 '미식 외교'를 추진해오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Thai Select'라는 인증제까지 운영하며 태국 식당의 해외 확산을 전략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영국에서 태국 레스토랑이 빠르게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팟타이, 그린커리, 나시고렝 같은 음식은 향신료가 들어가지만 지나치게 낯설지 않고, 밥·면·튀김류라 영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메뉴의 특성도 한몫 했을 것이다. 특히 태국 음식이 맥주와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펍과의 궁합을 완벽하게 설명해준다. 게다가 태국 음식은 비교적 조리 방식이 단순해 작은 펍 주방에서도 운영이 가능하다. 이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며, 태국 음식은 영국 펍 안에서 하나의 안정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 김치찌개, 불고기, 떡볶이, 핫도그, 치킨 등 K푸드가 주목받고 있지만, 'Korean Kitchen in Pub' 모델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몇몇 펍들이 코리안 스타일 치킨이나 김치를 곁들인 메뉴를 선보이곤 있지만, 타이레스토랑처럼 펍안에서 상시 운영되는 곳은 전무하다. 이 공백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스타일 치킨, 김치전, 불고기 같은 메뉴가 펍에서 기네스와 만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조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국 음식이 영국 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면, 한국 음식도 못 해낼 이유는 없다. 언젠가 런던의 오래된 펍 안에서 'Korean Kitchen in pub', 'Korean Food'라는 표지판을 마주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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