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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7.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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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번진짜안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7,815회 작성일 06-12-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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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피어싱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내 귀는 그냥 귀걸이로는 기가 막히게도 금방 막혀버려 피어싱에 도전해 보았다. 옆 방 랜드로드였던 크리스가 내게 3번이나 정말 결심했냐고 물어보았고 3번 연속 그렇다고 대답하자 과감히 귀에 1.2mm 짜리 빵꾸를 뚫어 주었다.

 뽁, 하는 소리가 났다. 내 귀에는 아령이 하나 달렸다.

 귀에 아령이 달려있기 전과, 달린 후의 세계는 확실히 달랐다. 뭐랄까, 불모지를 개간한 느낌. 크리스는 내게 구멍을 확장해 나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 ‘확장’ 이라는 단어가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 도시엔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고 이상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뼛속까지 그 도시 사람이었고 그 도시는 내 세계의 전부였다. 그 이상의 세계는 바라지도 않았다.

 어느 날 서울로 집이 통째 이사를 하는 바람에 나도 딸려서 서울에 왔다.
 머리에서 뽁, 하는 소리가 났다. 세계가 바뀌는 소리였다. 서울은 과연 거대한 도시였다. 내가 살던 도시가 조그마한 세계였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나는 웬일인지 어리석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릴 땐 ‘확장’ 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보수적이었던 옛 도시를 그리워하고, 그 도시의 친구들에게 계속 연락하고 어딜 가도 나는 그 도시 출신의 사람이라는 걸 밝혔고 당연히 투박한 사투리를 고수했고 당연히 친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세계를 변절하지 않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거대한 도시 서울의 세련된 매력이 성큼 내게 말을 걸었다. 
 - 이봐, 친구. 변절과 변화는 다른 말이거든?
 - 아아. 너 모든 센스가 정말 엉망이야. 패션, 유머, 표정, 몸짓, 상상......
 - 게다가 말만 안 하면 그런대로 참을 만한데, 넌 사투리도 넘 심해. 왜 안 고치지?
 - 스펙트럼이라는 단어 혹시 알아?
 서울 사람들의 지적들은 뽁, 뽁, 뽁, 뽁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들은, 내 머릿속에서 구겨져 있던 ‘확장’ 이라는 개념을 ‘펼쳐’ 주었다.

 나는 내 작은 도시의 작은 시절을 지키려던 나머지 내 안에 갇혀 시간을 멈춰버렸고, 덜떨어진 감각에 남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채 박제된,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당시의 내 작은 도시의 사람들보다 더 촌스러웠을 만큼.

 세상은 항상 변화한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순간, 인류는 멈춘다. 나는 그 때 제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 세상에! 고정관념 덩어리야!
 내 서울에서의 첫 짝사랑 여자애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거울이 되어 내 모습을 비참하고 남루하게 드러냈다. 나는 당장 박제모드를 박차고 일어나 스펀지 모드에 돌입해 온갖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였다.

 작은 도시는 잊혀져갔고, 메트로폴리탄의 강하고 거대한 논리와 압도적인 중심의 서사와 세계관의 끝없는 확장 넓이에 매료되었다. 더 이상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작은 도시의 내 친구들은 나와 멀어져갔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데 계속 쓰는 건 나도 답답하고 다른 사람도 답답해지는 세계이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한국인의 강인한 저항정신, 부문을 제외하곤 우리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계는 열려있는 공간이다. 닫고는 도무지 발전해 나간 경우가 없다. 알다시피 옆 나라 일본이 우리보다 조금 더 먼저 발전한 건 조금 더 먼저 열렸기 때문이었다. 로마제국의 힘도 그 열린 생각의 가공할 확장력의 힘이었다. 그것은 우주가 빅뱅 이후로 이 순간 까지 주구장창 확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가 그러고 있는데 인간이나 지구는 반항할 수 없다.

 나는 확장을 거듭하는데 배고팠다. 스타크래프트를 해도 내 플레이 스타일은 수많은 멀티를 자꾸 확장해 가며 물량으로 퍼붓는 식이었다. 오래된 책들의 세계와, 꿈의 세계, 오뎅의 세계, 빙하 같은 개와 개 같은 빙하의 세계, 내가 알아나가야 할 것들은 너무도 많았고, 나는 좀 더 멀리 나가야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영국에까지 기어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2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닫힌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내가 작은 도시에서 서울에 왔을 때 했던 것과 유사한 행동을 누군가는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여자는 아무리 영국여자라도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충격적이었다. 불편하더라도 한국식으로 행동하고 살며 영국따윈 글러먹었어, 라고 닫아 놓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기회는 찬스이고 확장은 멋진 단어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말해 두자면 반드시 한국인으로서 지켜나가야 하는 전통적인 가치의 보편적이고 명확한 명단을 만들 줄 아는 것 역시 확장의 세계이다. 무조건 큰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좋거나 옳다, 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닫힌 생각이라는 것이다. 생각의 영토가 어디까지 멀리인가, 라는 게 확장의 깊이인 것 같다.

 런던은 서울에 비해 거대함 면에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앞서 말한 확장력의 깊이처럼 보였다. 그들은 거의 모든 것에 열려 있되 바꾸지 않을 것은 절대 지키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영국인의 고질적인 나쁜 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모두 다 열어 놓은 채 속으로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엉큼하게 실리를 챙기는 모습은 한 때 거대한 제국으로 열렸던 나라 영국이 선택한 확장의 결과였던 셈이다.

 아유, 글이 이렇게 재미없다. ㅡㅡ;; 서둘러 결론 내자면 영국을 경험한 사람들의 귀에 뽁, 하고 영국이 뚫려 있다. 자 모르겠다. 그 다음은, 각자의 스펙트럼이다.

 곪거나, 막히거나 끔찍하게 너덜너덜 해지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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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5번진짜안와님의 댓글

15번진짜안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이 어디까지 허접할 수 있는가의 극단을 보여주면서 게으름의 극단까지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막판에 울지 마세요^^

mandu님의 댓글

mandu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거의 모든 것에 열려 있되 바꾸지 않을 것은 절대 지키고 있다'멋진해석이십니다.

2525님의 댓글

2525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런던은 확실히 그렇죠. 그래서 조금만 눈을 크게 뜬다면 배울것도 아닌점도 온몸으로 받아들일수 있죠. 좀 작은 도시들은 아직도 보수적이지만.

영국님의 댓글

영국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런던에서 배울점이라..... 어딜가든 열린 눈과 마음으로 보고 받아들인다면 뭐든 배우겠죠,.,, 특히 런던 이란곳은 거만한 영국사람들과  세계여러 인종을 종합선물세트로 만날 수 있다는거,,,그 속에서 개인 깜냥에 따라 수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흘려 보낸다는거 ,,,, 누굴만나든 한번쯤은 "아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똑바로살자!!" 스스로를 되돌아 본다는거,,,, 뭐 이정도ㅡ,,ㅡ

james님의 댓글

james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대국을 경영해본 경험에서 배어나오는 관용, 여유,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등을 미국, 중국, 영국등 세계의 패권을 가져보았었던 나라들에게서 느낄수 있죠... 한국은 나라도 작지만, 사람들의 가슴도 작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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