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16세도 국회의원 뽑게 한다는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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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에 엄마 된 부총리 "책임질 수 있는 나이" 옹호
야당은 "지지율 급락 정부의 술수" 비판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아직 고등학생인 경우가 대부분인 16, 17세 청소년에게 얼마만큼의 정치적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할까.
투표 연령을 낮추면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진보 진영에 유리할까. 그러니 이는 득표율을 높이려는 좌파 정권의 정치적 술수일까.
한국이 공직선거권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낮춘 게 5년여 전이다. 개헌 등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연령도 그와 같이 낮추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시도 교육감 선거권을 교육정책의 당사자인 16세로 낮춰야 할지에 대한 논쟁도 끊임없이 고개를 든다.
영국 정부가 17일(현지시간) 내놓은 '16세 이상으로 총선 투표 연령 하향' 계획과 이를 둘러싼 영국 사회의 논쟁은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
투표 연령 하향안은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지난해 7월 총선 당시 공식 정책공약집에 넣어둔 정책이다.
중도좌파 노동당 정부가 이번에 이 계획을 공식화하자 바로 '바닥에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정치적 수'라는 지적이 쏟아졌는데, 총리실 대변인이 "이미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선거 공약"이었다고 당당하게 나온 건 이 때문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적지 않다.
영국에서 16세는 합법적으로 노동이 가능하고 그에 따라 소득세와 국민보험료도 납부하게 되는 나이다. 부모 동의가 있으면 군 입대도 가능하다.
16세에 엄마가 돼 일과 학업, 육아를 병행하는 힘든 청년기를 보낸 입지전적 인물 앤절라 레이너 부총리는 이날 일간 더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사연을 내세우며 16세도 막중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수 야당들은 맹공을 퍼부었다. 특히 청년층의 지지율이 낮고 고령층 지지자가 많은 제1야당 보수당의 반응이 더욱 격렬하다.
사이먼 클라크 전 균형발전 장관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게리맨더링(선거구 조작)"이라고 주장했고, 폴 홈스 하원의원은 "정부는 어째서 복권도, 술도 살 수 없고 결혼하거나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16세가 투표는 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잉글랜드·웨일스에서는 18세 미만은 결혼할 수 없다. 하원의원 출마, 음주, 문신도 18세부터 가능하다.
중도우파 보수당보다 오른쪽에 있는 포퓰리즘 정당 영국개혁당도 투표 연령 하향안에 반대하지만, 좀 더 미묘한 반응이다.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익스프레스에 "정치 시스템을 조작하려는 시도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불쾌한 놀라움을 선사해 주겠다"고 했다.
영국개혁당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노동당을 앞지른 지 오래인 데다, 청년층 지지율이 노동당에 밀리더라도 유권자 분포상 큰 손해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ITV가 조사기관 '멀린 전략'에 의뢰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6∼17세의 정당별 지지율은 노동당이 33%, 영국개혁당이 20%, 녹색당이 18%, 자유민주당이 12%였다. 보수당은 10%에 그쳤다.
지난해 총선에서 영국의 등록 유권자 수는 약 4천800만명이었는데, 16∼17세 인구는 150만명으로 많지 않고 지지 정당이 다양하게 분포돼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패라지 대표는 청년 이용자가 많은 틱톡에서 130만명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 역시 영국개혁당이 '해 볼 만하다'고 믿는 자신감의 배경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부분은 새로 투표권을 받게 된 16∼17세의 반응이다.
ITV 여론조사에서 16∼17세 응답자 중 당장 총선이 치러진다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16세로 투표 연령을 낮추는 방안에는 51%가 찬성, 49%가 반대했다. 절반이 투표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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