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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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인터넷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웹 매거진이 유행했다. 웹진이라 불렀는데,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웹진을 만들었다. 다음 웹진에서 일하는 친구가 영국을 소개하는 글을 부탁했다. 이런 건 원래 자신들이 직접 와서 취재해야 하는 건데, 옛날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현지 유학생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에도 해외 특파원들 보면, 직접 파견한 기자보다 유학생이나 현지 교민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취재비와 원고료를 준다는데, 유학생 입장에선 공짜로 관광하는 거라 시간만 있으면 나쁘지 않은 알바였다. 나도 런던을 잘 모르고 있던 때여서, 이번 기회에 런던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빅벤, 웨스트민스터, 버킹엄, 런던아이, 대영박물관 등, 이런 곳은 영국에 오지 않아도 TV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너무 잘 알려진 곳이라 소개하지 않았다. 영국에 오지 않으면 알기 힘든 진짜 명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객관적 시각에서 쓰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내 취향이 많이 반영됐다. 나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주변 환경과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좋아했다. 런던 시내와 근교에 사람들이 몰라서 안 찾는 고대 유적지나 건축물이 많은데, 오래 머물 수 없는 장소인 데다가 힐링과는 거리가 멀어 내 취향이 아니었다.

Carnaby Street와 Camden Market은 딱 내 취향이다. 캠든 마켓은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다. 일일 방문자가 20만 명에 달하는 명소 중의 명소다, 카나비 스트리트도 재미난 곳이다.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문화의 중심지로 유명한 거리였다. 힙스터들이 많고, 예술가와 공방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관광객만 넘쳐나고 옛날의 명성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90년대 말부터 00년대 초까지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는데, 오래가지 못해 관광 쪽으로 치우쳤다. 첼시의 킹스로드 역시 카나비 스트리트와 함께 패션 문화를 선도하는 거리였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카나비 거리 중간에 푸드 코트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저녁 먹으러 가면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기간에는 거리를 예쁘게 꾸며서 볼만하다.>
밤에는 유흥가 때문에 분위기가 좀 그렇다. 밤 9시 이후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유명한 나이트클럽이 카나비 스트리트 옆에 붙어 있었다, 밤 9시 이후로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애들이 카나비와 인근 거리에 넘쳐났는데, 그게 클럽 복장이다. 옷차림 때문에 오해를 사는데, 대부분 그냥 춤추러 오는 애들이다. 본의 아니게 클럽에 자주 갔다. 우연한 계기로 런던에서 다시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시내 유명 클럽들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다.

브릭 레인 마켓은 (Brick Lane Market) 방글라데시 커리와 그라피티 벽화로 유명하고, 일요일에 가면 벼룩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그라피티 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로일지도 모르지만, 벼룩시장은 한국의 동묘시장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포토벨로 로드는 (Portobello Road) 노팅힐 중심에 있는 벼룩시장이다. 영화 노팅힐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컬러풀한 주택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앤틱과 빈티지로 유명한 시장인데, 시장의 길이가 무려 1.5km나 된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긴 시장일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이런 곳보다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 같은 곳을 선호할 수도 있는데, 그런 곳은 이미 널리 알려진 곳이라 소개해봐야 식상할 뿐이다. 난 빌링스게이트 수산 시장(Billingsgate Fish Market) 같은 곳을 선호했다.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를 더 좋아했다.
박물관이나 유적지도 좋아하긴 한다. 역사와 고고학을 좋아해서 어릴 때 사학자를 꿈꿨던 적도 있다. 미술도 좋아한다. 음악과 운동을 더 자주 즐기지만, 정신적으로 힐링이 필요할 때는 그림 그리러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곤 했다. 물감이 자연스럽게 번지며 몽환적 느낌을 주는 수채화를 좋아했다. 사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물감이 얇게 번지며 주변 사물들이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는 그림을 좋아했다. 수채화 그리기에 정말 좋은 곳이 있는데, 코츠월드다.

영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가장 많이 찾은 장소가 코츠월드였다.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지역이 넓어 하루 만에 다 볼 수는 없다. 하루에 여기저기 돌아보려면, 마을간 교통이 불편해서 자차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코츠월드는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런던에서 기차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인데, 마을에 가로등이 없다 보니 해가 짧은 겨울은 피하고, 여름이나 가을에 관광하면 좋다.
영국 음식이 대게 맛이 없는데, 전통 음식 중에 몇 가지는 먹을 만했다. 콘월에서 광부들이 일하러 나갈 때 가지고 다니던 간편식 중에 ‘코니시 패스티(Cornish Pasty)’ 라는 음식이 있다. 반달 모양으로 생긴 파이의 일종인데,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광부들이 먹는 음식이라 열량이 높지만, 피시&칩스보다는 괜찮았다. 콘월 대표 음식 중 하나지만 코츠월드에서도 먹을 수 있다. 콘월도 한 번쯤 구경하러 가 볼 만한 곳이다. 콘월의 광산들이 모두 문 닫고, 지역민들이 바다에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는데, 해물 요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되었다. 이 동네는 해물 요리법이 다양해서 음식이 제법 맛있다.

런던에서 가까운 곳에 윈저가 있다. 11세기에 정복왕 윌리엄이 세운 성으로 영국 왕실이 소유하고 있다. 왕실 소유여서 왕실 근위대가 경비를 서고 있는데,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공식 거처로 사용 중이다. 트럼프가 방문할 때를 제외하고 내부 관광이 허용되는데, 한 번쯤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내부 관광보다 남쪽 정문 관광이 사진 찍기에는 더 좋을 것이다. 남쪽 정문에서 일자로 뻗은 길 좌우의 경치가 제법 좋다. 넓은 정원과 공원을 갖추고 있어서, 날씨가 좋은 날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관광객을 위한 Windsor Duck Tours 라고 불리는 1시간짜리 수륙양용 버스투어가 유명하다. 육상에서 관광 후 템스강으로 들어가 수상에서 윈저 캐슬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French Brothers Riverboats 도 있는데, 2시간 정도 강을 따라 돌아다니며 윈저 캐슬과 사립 명문 이튼 컬리지를 수상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윈저 가는 길에 올드 윈저라는 동네가 있는데, 부자들의 별장이 많은 곳이다. 강변에 고급 보트와 요트가 즐비한데, 요트보다는 모터보트가 더 많았다. 이곳에서 보트 대여도 가능해서 유학하는 동안 자주 이용했다. 대여할 때 보트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시험을 치르는 자격증이 아니고, 교육을 수료하면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라 하루나 이틀 정도 날 잡아서 교육받으면 자격증이 나온다. 10시간인가? 교육받으면 자격증이 나왔다. 보트 렌트비가 1시간 25파운드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폭이 좁아서 한 시간 놀면 재미가 떨어지지만,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 좋아서 자주 이용했다.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영국에 나름 오래 있었는데도 못 가본 곳이 수두룩 하네요 ㅎ
관광객 모드가 아니어서 더 그랬나봐요.
Dave0723님의 댓글의 댓글
01년에 한국 유학생이 유난히 많았는데, 놀러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제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개강 후에는 런던에서 가까운 곳만 다니고 북쪽은 거의 못 가봤네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공부 안하고 무조건 쉬었는데, 여가 생활로 한 주의 스트레스를 풀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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