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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 새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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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번진짜안와 이름으로 검색  (220.♡.249.213) 댓글 0건 조회 5,049회 작성일 10-10-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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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내 방에 숫자라곤 보일러 컨트롤러의 실내 온도뿐. 새해인지 땅콩인지 몰랐다.





그러나 실수로 핸드폰을 열어 보았더니 1월 6일 이라는 숫자가 벌컥 들이대 왔다.





순간적으로 닫으려고 했는데





숫자가 민첩하게 핸드폰 폴더 사이로 발을 끼워넣더니 내게 소리쳤다.





"이봐 이봐! 내가 2006년 1월 6일로 보여?"





아차, 하고 생각해 보았다.





2006년 1월 6일엔 친구들과 떡실신 할 때까지 술 파티를 하고 있었다.





지금 나는 내 방에 맨 정신으로 있으니까 분명히 2006년은 아닐 것이다. 그럼 안드로메다의 달이 3000개인 행성의 2007 번 째 위성의 1월 6일인가?





살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넌 뭐야?"





"나 2007년 새해야."





나는 흠칫 놀랐다. 새해! 새해라. 뭐지? 어디서 술 한 잔 같이 했던 것 같은 단어인데.





마음 속으로 섬뜩한 의구심이 한 줄기 흘러내렸지만 난 애써 태연하게 대꾸해줬다.





"여어, 그래. 새해아냐?"





하지만 의심한 탓인지 바로 정체를 묻고 싶어졌다.





"근데 웬일이야? 누가 보냈나?"





새해는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더니 체념한듯 내게 말했다.





"새해가 왔는데 사람이 너무 가만히만 있으면 안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벌써 6일이나 지났단 말이야. 뭘 하고 있는 거야?"





음..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실은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가급적 안 움직이면서 집에 웅크리고 있기로 했다.





움직이면 돈이들고 배도 자주 고파진다. 가만히 있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새해가 뭔데 가만히 있지 말라는 건가.





"가만히 안 있으면 뭘 해?"





"계획 같은 걸 세워보란 말이야."





작년에 세워 보았던 올해의 내 계획은 창작 지원금이 나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영국에 간다. 가서 한 달만에 뒤도 안 돌아보고 후딱 소설을 완성하고, 출판을 하든지 말든지 원고 넘기고 한 달쯤 놀다가 인도에 가서 시타르나 배우면서 살겠다. 라는 것이었다.





만약 지원금을 못 받으면 열심히 4달 쯤 일을 해서 돈을 아귀같이 모아 뒤도 안 돌아보고 영국에 간다. 가서 한 달 만에 뒤도 안 돌아보고 후딱 소설을 완성하고 놀다가 인도에 가서 따볼라나 배우면서 살겠다. 였다.





하지만 연말에 예수님은 말 구유에 오셨는데 창작지원금은 딴 데 떨어졌고, 떨어진 그 날 바보짓 하다 운전면허가 마굿간에 묶여버렸다.


유일하게 경력이 많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인 운전직 일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냥 가라앉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새해니까, 계획을 세워 보라고?





무슨 계획을 더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세울 수 없으니 안 세웠지."





"마음대로 해. 넌 돼지고기 껍데기 같은 녀석이야."





새해는 묘한 말을 남기고 핸드폰 폴더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딱' 하고 폴더가 닫혔다.





순간 마포에 있는 껍데기 맛있게 구워주는 식당에 가고 싶었고





핸드폰을 여느라 조금 움직인 것을 후회했다.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웅크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가슴이 뭉글뭉글 아파왔다. 돼지고기 껍데기 라니!





나는 그 정도로 쫄깃한 인간도 못 되잖아.








나는 슬며시 일어나 방청소부터 시작하고 산세베리아에 물을 주었고 씽크대에 잔뜩 쌓인 그릇과 냄비들을 설거지했다. 뭉글뭉글한 가슴은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금씩 사그라들었따.





22 라고 적힌 보일러의 숫자가 '부산스럽게 왜 그래?' 라고 물었다.





"새해아냐."





나는 보일러 온도를 21 까지 낮추었다. 21세기는 이제 겨우 7년 째고





난 이제 겨우 2년 째다.





시간이 아직 있다.





땅굴을 파서라도 2007년엔 반드시 영국에 갈 것이다.





mandu
새해에도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Jenniferstory-.
맘 아파요..웃다말고 사례들리다 눈물나는 그런 아픔..영?오시면 없는돈 탈탈 털어서 제가 못마시는 쐬주와 삼겹살이라도 대접해드리겠습니다~>_<
몽블랑
이밤에 레스터스퀘어에서 한잔하구 얼큰한 마음에 들어왔더니 제글바로 위에 님글이 있길래 냉큼 들어왔어요. 여긴 여전히 바뻐요. 줄은 길고 애들은 가지각색으로 개기고(오늘은 디비디달라는건 아닌데 어린넘이 불빌려 달라길래 나 크리스챤인데 했더니 그래서라고 묻길래 뽁큐 해줄라다가 크리스챤이라 한게 기억나 나 담배안펴라고 했답니다) 암튼 런던오면 연락줘요. 히드로든 루톤이든 스탄스테드건 마중나갑니다. 물론 소주 사오실거죠?
15번진짜안와
캐롯! 가면 사 가야죠^^ 땅굴을 파더라도 뒷 주머니에 꼽고 가겠삼. 그거 일단 마시고 제니퍼 님이 사시는 거 또 먹어요..ㅎㅎ
뚱쓰
오랜만에 글 올리셨네요...방가....새해 복 마니 받으셈...
러브리진영♡
글 읽으면서 글 너무 잘쓴다고 생각했는데 글 쓰는 분이셨군요.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ㅋㅋ 넘 좋네요 ㅋㅋ
쪼소입니다
아 정말 글 좋습니다 :) 새해가 와버렸는데 열흘째 뭘 하는지 ㅎㅎ 얼른 영국 오세요 :)
낄낄낄
하루키+매가쇼킹천재만화가고필헌.. 작가시라면 실례의 말일텐데.. 암튼 글이 참 재밌어요
Golders Green
영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사람중 한사람으로서 님의 올해 소원 꼭 이루길 바랍니다.
*미야*
앗 15번 진짜 안와님이시답 ㅋ 글자주 올려주세요~ (물론 블로그에 몰래가서 가끔 글들을 훔쳐읽고 나오긴 하지만;;;) 얼른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출판하세요 제가 학생할인 안할때 가서 사겠습니다 ㅋ
해머스미스의추억.
저도 런던가서 15번 님이랑 정모갖구 싶네요.흑.ㅎㅎ
carolina
오시면 브릭레인 베이글 하나 대접해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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