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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15번진짜안와의 짧게 때리는 소설 시리즈 1</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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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번진짜안와 이름으로 검색  (220.♡.249.213) 댓글 0건 조회 2,351회 작성일 10-10-0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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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진짜안와의 짧게 때리는 소설 시리즈 1



A to Z



영국에 살게 된지 거의 이년. 글자를 잘못 읽거나 이름을 잘못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의 난감함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인데다 한국도 그립고 지독하게 외로워서 언어중추가 충격과 공포를 호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떤 고유 명사의 제대로 된 발음 같은 것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절대 바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언어 환경의 변화만으로도 허둥거리는 불완전한 존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흠흠.



예를 들면 ‘요시토모 나라’ 라는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를 ‘요시모토 나라’ 라고 나는 지난 이년간 꼼짝없이 잘못 알고 살아왔다.


요시모토 바나나 라는 소설가는 있어도 일러스트 하는 사람은 분명 요시토모 잖아. 제기랄.



나는 이틀 전 토튼햄 코트로드의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정말 예쁜 여자와의 소개팅 자리에서 딱 그걸 틀리게 말했다.



“전 요시모토 나라의 악동 캐릭터 감각이 그냥 쩐다고 생각합니다.”


“네? 요시모토 라구요?”



상대는 도쿄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술 좋아하는 나로 치면 좋아하는 소주를 소세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저기, 저랑은 잘 안 맞으실 듯. 안녕.”



그 여자가 잠시 후 무심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남긴 말이다.


그 여자가 영국 생활 최초이자 마지막 소개팅이 될 것 같았다. 젠장.



소개시켜 준 하우스 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형, 졸라 영국에서 한국 사람끼리 그런 소개팅이 흔한 줄 알아? 너무 하네.”



그런 짓을 자주 하지 않는 것을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오늘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일본 쓰시가게. 내가 맡은 일은 모터바이크를 타고 쓰시를 배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전임 배달원이었던 프랑스인 기욤이 물려준 너덜너덜해진 런던 A to Z를 들고


가로 5, 세로 C 가 만나는 네모 칸 안에서 세인트 마틴스 스트리트를 찾으려고 헤매고 있었다.


난파선 선장이 나침반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나는 안광을 침처럼 지도 위에 질질 흘리며 지도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날씨는 여름, 음식이 상하기 딱 좋다. 빨리 배달가지 않으면 곤란한 일을 당할 것이다.



그때 전화가 왔다. 가게번호였다. 이년이나 지났지만 영어가 무서운데


그 중에서도 전화 영어가 제일 곤란했다. 대략 몸짓으로 때려잡을 수도 없잖아.


과연 매니저 수지의 말을 전화로도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일단 받아야 했다.



“어디야? 네오. 전화 왔어. 왜 안 오냐고.”


“아임 온 더 웨이...”


“네오, 잘 들어. Saint Martins St야. A to Z 가지고 있지?”


“슈어. 벗...”


“서둘러 줘. 멋쟁이 네오. 그보다 더 어려운 곳도 잘 찾았잖아.”


“오케이. 돈 워리, 수지.”



매니저 수지가 한 말은 내가 대충 알아듣고 해석한 말이고 내가 한 말은 그대로다.



나는 아무리 책을 봐도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배달할 곳의 번지가 일치하지 않는 기현상을 극복할 수 없었다.



LONDON A to Z라는 책은 런던 어디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런던의 지도이자 주소록이다.


그런데 거리 이름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는지라 작은 골목과 꽤 긴 스트리트 이름이 만나면 그 작은 골목의 가로명은 잘 찾을 수가 없다.



더구나 배달하면서 들고 나온 책은 너무나 작은 것이었다.



쓰시가 들어있는 종이 가방에 붙은 영수증엔 고객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젠장, 또 전화영어였다.



“헬로우? 디스 이즈 와사비 스시. 알 유 미스터 팀버레인?”


“예스.”


“아임 소리 벗 아이 캔 낫 파인드 유어 어드레스.”


“오 리얼리? 이프 유 스탠드 쩜쩜쩜.”



그는 친절하게 자신의 주소를 찾아오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쩜쩜쩜 부분은 조금 헤매기 쉬운데 센 마틴스 시티가 아니고 에스티 쪽에 있어. 분명히 시티랑은 달라. 라고


대충 해석하면서 들었는데 실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시티가 뭐 어쨌다는 거야. 아 정말, 전화영어.



“오! 아이 씨. 땡스 어 롯. 알비 데어 베리 순.”



제대로는 모르겠지만, 손님에게 한 번만 더 설명해 주세요. 제가요 영어를 잘 못 들으니


천천히 완전 쉬운 단어만 써서 또박또박 한번만 더 말해 주세요.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젠 동물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알기 위해 답안지를 컨닝하는 것처럼 A to Z를 꺼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분명 세인트 마틴스 스트리트는 17 페이지야. 그럼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맞아.


이 근처인데 찾기만 하면 맛있는 쓰시를 목구멍 앞에까지 딱 배달해 주리라.


근데 뭐가 문제야. 하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로명이 한 낡은 뉴스 에이전시가 붙어 있는 조그만 건물 모서리에 붙어있었다.



St Martins Ct.



헉, 이런 바보같이. 내가 있는 곳은 세인트 마틴스 스트리트가 아니라 세인트 마틴스 코트였다.


약자로 Ct라고 되어있었는데 내가 A to Z에서 Ct를 St랑 헛갈린 것이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바보짓이야.



나는 다시 미친 듯이 A to Z를 뒤져 다시 세인트 마틴스 스트리트를 찾아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모터바이크 그립을 죽도록 잡아 당겨 세인트 마틴스 스트리트에 번개처럼 도착했다.


다행히 두 블록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신호도 개 무시하고 달리는 내게 런던의 운전자들은 창을 열고 헤이! 라고들 외쳤지만 나는 인정사정 볼 것 없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었으니 분명 욕을 잔뜩 들어먹을 거야. 젠장.



하지만 내려서 배달통을 열고 쓰시를 꺼내는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모터바이크를 거칠게 몰다 급브레이크를 몇 번 잡았더니


따귀 맞는 뺨을 고속 촬영한 것처럼 쓰시가 한 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끝의 두세 개는 생선과 밥이 분리되어 완전 처참한 누드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배달할 수 없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국위선양이고 나발이고 관계없이 양심적으로 일한다.


더구나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 누를 끼칠 수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객에게 줄 젓가락 두 개 중에서 하나를 뜯고 포장을 열어 그 분리된 쓰시를


다시 온전한 쓰시로 옷 입히기 시작했다.



완성품은 쓰시라는 디자인 감각에서 손맛을 뺀 어떤 모양새가 되었고 뭔가 약간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급조한 형태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들고 뛰어올라갔다.



“굿 아프터 눈. 디스이즈 쓰시 딜리버리.”



건물 안은 넓은 사무실이었고 대략 50명 정도가 모니터에 코를 박고 일 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 중에 누가 팀버레인 인지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입구에 앉은 마음씨 좋아 보이는 대머리 신사를 붙잡고 물었다.



“익스큐즈 미, 아임 룩킹 포 미스터 팀버레인.”


“아, 팀버레인? 저기 두 번째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이야.”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그 두 번째 책상으로 가서 고객에게 쓰시를 건네며 말했다.



“쏘리 아임 레이트.”


“노 프라블럼. 땡큐.”



팀버레인 씨는 느낌이 좋은 셔츠를 입은 영국 신사였다.


셔츠는 하얀 바탕에 모눈종이 무늬이면서 줄은 보라색이었다.


어떻게 보면 촌스러울 수도 있는 셔츠였는데 그가 괜찮다고 말해서인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모니터에 집중하느라 고개를 돌려 쓰시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돌아설 때도 뭔가를 열심히 입력하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 하는 영국인은 처음 본다.


다행이었다. 어차피 돈은 주문하면서 카드로 결제하니까 나는 그냥 빨리 돌아가기로 했다.


쓰시의 상태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걸리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엔조이. 유어 런치.”



내가 막 건물에서 빠져나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자 매니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팀버레인 씨가 배달이 늦는다고 난리야. 어떻게 된 거야?”


“리얼리? 아이브 저스트 딜리버드 잇. 원 미닛 어고우.”



나는 배달용 영수증을 다시 확인했다. 그 순간 나는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오오, 니미럴, 이럴 수가.



빌어먹을 영수증엔 주문자가 Mr Timberlake 라고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팀버레인 이란 오뎅같은 작자는 뭐야?


그 녀석도 뭔가를 시킨 건가. 아. 정말, 확인도 안 한 거냐.



그런데 왜 또 나는 하필 팀버레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팀버레인은 분명 내가 죽어라 하던 WOW라는 게임의 엘윈 숲에 있는 엔피시 이름이잖아.



그날 시원하게 배달 일을 잘리고 집에 돌아와 나는 집 앞 펍에 들렀다.


나는 벨리스Beli's 한 잔을 주문했는데 베일리스baileys가 나왔다.


나는 뭔가 단단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원샷했다.



집에 돌아와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의 Until The End of The Time을 들으려고 한국에서 가져온


시디를 틀었는데 레드 제플린Led Zepplin의 Dazed &Confused가 나왔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울지 않기 위해 나는 식사를 하려고 했다.


마지막이라면서 가게의 일본 친구들이 내게 챙겨 준 쓰시 박스를 열자 와비사비 쓰시 라고 일본어로 적힌 젓가락이 나왔다.


일본어는 제대로 읽을 수 없었지만 밑에 영어로 써진 철자에는 Wabisabi Sushi라고 분명 적혀 있었다.


어떻게 난 지금껏 저걸 와사비로 읽었단 말인가.



6개월 동안 일하면서도 잘못 읽은 게 부끄러워 나는 쓰시를 팽개치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제기랄. 침대 위의 하얀 천장은 내게 말했다.



“이제 넌 2주치 데포짓만 남은 거지. 흐흐.”



나는 드디어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된 건가? 라고 처절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국적이 한국이 맞는지 이제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면 어쩌지?



(끝)




영사 동지 여러분 안녕하셨세요?



그동안 미친 듯이 우울해서 얼굴도 못 들이대던 15번진짜안와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땅굴 파던 애 딱 튀어나오기 좋을만큼 죽자고 더워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고 보기엔 오늘 올린 소설이 좀 킹왕허접인듯.



어쨌든 반갑습니다. 언제나 영사가 그리웠답니다. ^^





bvlgari
15번 진짜안와님 글 영사에 딱맞는 코드에요. 너무 잼있어요
맹가이버
ㅋㅋㅋㅋ아 웃다가 울었어요.
katestyle
재밌게읽었어요 ㅎㅎ 담에 또 부탁드려염!
thinkaboutyou
정말 재미난 글이었어요...고유명사...영원한 숙제아닐까요. 스펠링을 봐도 발음으 지멋대로고 첨 들으면 영락없이 못알아듣고 모 그런...그리고 나중에 그거 있잖아 그러면서 완전 엉뚱한 단어 말하고...요즘은 버스에 가끔 역이름 말해주는 서비스 있어서 도로이름같은거 들으면서 따라해요. 물론 지하철 역이름도 한번씩 방송따라서 말해본다는...ㅋㅋ
JJICJJA
15번님 너무하네요... 04UK.COM에는 연재 빵꾸내시고...
15번진짜안와
아, 찍자님, 죄송해요. 거기에도 쓸게요. 빵꾸가 1년이니 너무 했군요;; 게시판 썩는 중이겠지요? ;;;;
니퍼
흐흐 15번님 저두 영사가 그리웠답니다.. '뺨맞는 장면을 고속촬영'에서 폭소했네요^^ 반가워요~
세상을다가져요
힘내세요!! 참,, 계속 2년 동안 영국에 머무신 이유가 궁금해요..영국의 매력을 좀..적어주실수 있으신지요.. 저도 요즘 향수병에 우울한지라..
새우92
글 정말 재밌게 쓰시네요:)ㅋ 부럽다 ㅋ 잘봤습니당ㅎ
Saja
( ^ ____ ^ )
느홍홍홍
와...ㅋㅋㅋ
15번진짜안와
세상을다가져요님 영국의 매력은 표면적으로 서늘 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그 안개 같은 무언가의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라고 생각합니다. ㅋ 불가리님, 니퍼님 반가운, 사랑하는 이름들이 정말 포근합니다.
nostalgia & new
역시~~ 글 넘 잘 써요. 잼있어요^^:
메일리
ㅎㅎ 재밌게 잘 읽었어요. 저도 그렇게 고유명사들을 잘 못 알아서 낭패였던 적이 몇 번 있었었요. '니나리찌'를 '나나리찌'로.. ㅋㅋㅋ 그 외에도 참 많았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이러구이따
15번님..영사 컴백하시는 건가요??? 정말 재밌게 읽고 그랬는데..^^ 얘전에 15번버스님 글 검색해서 읽고 그랬던 기억이..ㅋㅋ 다시 읽어봐도 정말 재밌네요..^^ 앞으로도 계속 올려주세요... 홧팅~!!
92CU
남의 일이 아니군요... 영국에 한번이라도 계신 분이라면 이런 경험 충분히 이해할 거 같아요... 정말 웃다가 맘이 짠해지네요..
라니
잼있게 읽었네요. ^^ 영국에 없더라도 저에겐 자주 있는 일이에요. 오래전 남친과 헤어지자고 선포한후, 눈물흘리며 매달리는 남친을 지긋이 쳐다보며 제가 말했죠. "저길 봐. 저게 내마음이야." 창밖으로 열심히 뭔가를 찾던 남친 "어디??" "저기 간판에 써있잖아. 눈없어? 다시 시작이라구." 저는 건물밖에 써있는 beginning을 가르쳤죠. 남친왈,"저거 베니건스인데?" 나 -_-;
러브하나짱
완전 잼있어요 ㅋㅎㅎㅎ 저두 남에 님처럼.. 소설로써 까페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는군요... 앗.. 영어 공부는 하지두 않고 ㅋ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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