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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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자취를 오래 해서 먹고 싶은 한식은 거의 다 할 줄 알았다. Argos라는 곳에서 밥솥을 샀다. 테팔 제품인데 19.99파운드였다. 보온 기능은 없어서 먹을 만큼만 밥을 지어 먹었다. 나중에는 04카페에서 중고로 5파운드 주고 샀다. 정수 필터가 있는 물통도 사고, 튀김기도 샀다.

Tesco에서 장을 보는데 거의 모든 것이 한국보다 저렴했다. 재활용 종이팩에 들은 1리터 짜리 오렌지 쥬스의 가격은 충격이었다. 20펜스였다. 이게 돈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박리다매의 정석을 보여주는 PB상품이었다. 테스코 전체 매출의 25%가 쥬스와 우유에서 나온다. 고기도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buy one get one free가 일상이었다.
야채도 저렴했다. 배추도 있었는데 알배추였다. 영국에도 배추가 있다. 샐러드용으로 알배추만 도려내고 나머지 부위는 모두 버리는 것 같았다. 김치 담그려고 배추를 찾아 헤맸는데 알배추 말고는 없었다. 뉴몰든에 만나슈퍼나 코리아 푸드에 가야만 배추를 구할 수 있었다.
테스코에 인도 쌀이 많았는데 한국인 입맛에 안 맞는 쌀이었다. 먹을만한 쌀은 오리엔탈 푸드에서 구했다. 배추 사 오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김치도 구입해 먹었다. 김치 대용으로 단무지나 무채에 고춧가루를 버무려 먹기도 하고, 오이 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ASDA라는 곳이 테스코보다 조금 더 저렴했는데, 미국 월마트의 자회사다. 너무 저렴해서 싸구려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도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탓에 주로 가까운 테스코를 이용했다. 한달 식비가 저렴해서 영국에 있는 동안 도움이 많이 됐다.
테스코에서 한국보다 비싼 식자재는 찾기 어려웠다. 확실하게 비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홍합과 생굴이었다. 홍합 1개에 2파운드였다. 생굴은 더 했다. 비싼 건 하나에 3파운드였는데 저렴하게 먹으려면 오이스터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아야 했다. 식당을 찾아가도 1개에 1~1.5파운드였다. 원산지를 찾아가면 저렴할까 싶어서 켄트에 방문했는데 현지에서도 비싸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영국에서 유일하게 먹지 못한 것이 생굴이었다. 홍합은 바다에 들어가 직접 주워 먹었다.

어느날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마침 그때가 썰물 시간이었다. 바닷물이 빠진 것을 보고 거의 본능적으로 비닐 봉다리를 찾았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검을 봉다리를 주워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 밖으로 드러난 작은 갯바위에 거북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스크래퍼가 있어야 하는데 맨손으로 따기 어려워 거북손은 포기했다. 홍합 줍기에 집중했다. 조개도 있었다. 한참을 허리 숙여 주워 담다가 허리를 폈는데 깜짝 놀랐다.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두 멈춰 날 응시하고 있었다. 쪽팔렸다.
그날 저녁은 홍합탕과 조개찜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이상한 소문이 퍼져있었다. 데이브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전날 내가 홍합 줍고 있는 것을 누군가 본 것이다. 스테파니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날 걱정해주었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그게 뭐 어때서? 내가 돈이 없어서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주워 먹은 것이 아니다. 채집이다 채집...그 후로 사람이 없는 해안 끝에서 주워 먹었다.
시내에 중고 물품 상점이 있었다. 온갖 물건이 다 있는 중고품 만물상이었다. 낚시대가 있길래 저렴하게 하나 구입했다. 이스트본 피어 안쪽 끝에 낚시터가 있었다. 낚시하러 갔더니 그곳을 찾는 낚시꾼들은 낚시대를 3~4개씩 가지고 다녔다. 첫날은 맛보기로 앉아 있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다.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니 많이 잡는 사람은 8~9마리를 잡기도 했다.
어종은 대부분 플랏 피시라고 부르는 넙치류다. 피시앤칩스 재료로 자주 활용되는 어종이다. 광어도 넙치류다. 잡히는 놈들 중에 광어가 끼어 있었다. 나는 회를 굉장히 좋아한다. 중고 낚시대 2개를 더 사고, 새걸로 하나를 장만해 총 4개의 낚시대를 던졌다.
잡히긴 하는데 크기가 너무 작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였는데 머리 떼어내고 나면 살이 몇 점 나오지도 않는 작은 녀석들이었다. 영국인들은 그것도 먹었다. 나는 물물교환을 시도했다. 좀 큰 놈을 잡은 사람에게 다가가 내가 잡은 3마리와 바꾸자고 딜을 했다. 3~4마리 주고 큰 놈으로 바꿨다. 그날 저녁은 회였다. 와사비와 간장은 테스코에 판다. 초장은 오리엔탈 푸드에서 구했다. 회 좋아하는 동생들을 불러서 함께 먹었다.
낚시꾼들과 친해지면서 함께 배낚시도 가고, 장어 잡으러 템스강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과거 산업 혁명으로 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공해가 심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 폐수들을 여과 없이 템스강에 방류하면서 수많은 어종이 멸종을 맞이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종이 장어였다.
부자들은 더러운 물에 사는 장어를 먹지 않았지만 돈 없는 서민들은 살기 위해 장어를 먹었다. 장어의 강력한 생명력과 번식력은 영국 서민들을 모두 먹여 살렸다. 장어가 얼마나 많이 잡혔으면 유럽으로 수출까지 했는데, 유럽 전역에 유통되는 장어의 85%가 영국산이었다.
강력한 번식력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점차 멸종 단계에 이르렀고, 뒤늦게 개체 보호를 위해 장어잡이를 금지시켰다. 나중에는 상업 목적만 아니면 낚시를 허용했는데 템스강 상류에서 잡았다. 영국에서 먹는 장어구이 맛이 일품이었다. 영국의 장어 요리법은 한국 보다 훨씬 더 다양했다. 낚시꾼들과 함께했던 순간들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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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이 물가가 비싸도 식재료는 저렴한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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