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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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나왔을 때가 밤 10시 반쯤 됐을 것이다. 1주일 치 숙박비를 돌려받지 않고 나왔다. 그냥 버린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돈 버릴 줄 알았으면, 그냥 학교에서 구한 숙소 계약을 1주일 앞당길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씁쓸했다. 인터넷으로 방부터 찾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그 시간에 뉴몰든 하이스트리트는 정적이 흘렀다. 한인 업체는 유학원, 여행사, 신문사, 부동산, 한의원이 다였는데 문 닫은 시간이었다. 음식점은 국일관, 아사달, 함지박이 다였다. 버링턴 로드에 한식당 3개, 킹스턴 로드에 한식당 2개와 서울카센터, 한인회관, 이게 그 당시 뉴몰든 모습이었다. 서울 플라자는 코리아 푸드의 소매점인데 02년에 1호점이 생겼을 것이다. 만나슈퍼도, 아가씨 미용실도 02년에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나슈퍼 생기기 전에 Mini Stop이라고 한국의 편의점을 흉내 낸 상점이 있었는데 밤 10시면 문 닫았다.
인터넷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유학원과 신문사가 몰려있는 건물 뒤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노트북을 꺼내 외장형 무선 랜카드를 연결했다. 요즘 노트북은 기본 장착이지만 그 당시 노트북에는 무선 랜카드가 없었다. 영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매우 낮았는데, 뉴몰든에는 인터넷 없으면 금단 증상에 시달리는 한국인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무선 신호를 수집하는데 10개 정도 잡혔던가? 사용자 이름을 보니 모두 한국인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안테나 3개 이상 뜨는 신호를 잡았다. 보안에 관심이 없던 시절이라 비번 설정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뎀의 공장 출고 비번 admin1234 또는 1234567890을 입력하면 접속됐다.
그 당시 영국의 인터넷 속도는 처참했다. 다이알업(Dial-up)이 주력 상품인데, 이건 한국에선 거의 사라진 전화모뎀이었다. 브로드밴드(ADSL)가 시작된 해가 2001년이었다. 전화모뎀 56kbps는 무료였고, BT의 ADSL 512kbps는 월 25파운드, 1메가는 월 30파운드였다. 2메가짜리는 PC방이라 부르던 인터넷 카페에나 있었고, 일반 가정에는 보급되지 않았다. 한국에선 이미 50메가짜리가 나왔고, 영국에서 02년에 2메가짜리가 보급되었을 땐 한국에선 100메가가 출시됐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속도가 느린데 무선 랜으로 접속하니 속도가 더 느렸다. 다음 포털사이트를 열고 로그인을 했다. 한 5분 정도 걸렸을 것이다. 04카페에 들어가 방 구하기 메뉴를 클릭해서 페이지가 열리는 데까지 10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오래 걸려도 페이지가 열리면 다행이다. '응답 없음.'이라도 뜨면 진짜 오열했다. 한번 페이지가 열렸을 때 그 집에 그냥 들어가야 했다. 다른 방 구할 여유가 없었다. 글 제목에 ‘뉴몰든’이 적힌 글을 조심스럽게 클릭했다. 한참 걸려 열린 페이지에는 ‘잠만 잘 분, 월 렌트 불가, 1박 10파운드’라고 적혀있었다. 왠지 모르게 미심쩍었지만 다른 방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걸어서 1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 차를 가져가도 10초 정도 걸리는 진짜 가까운 곳이었다. 2베드 플랏이었다. 집이 진짜 좁았다. 생활 공간이 아예 없는 이상한 집이었다. 현관 열면 바로 옆이 화장실이고, 정면에 방이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더블룸보다 조금 큰 트윈룸이었다. 그 옆이 팬트리, 팬트리 옆에 3~4평 정도 되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부부와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 두명이 침대 없이 함께 쓰고 있었다.
1박 10파운드면 월 300파운드인데, 그 돈이면 뉴몰든에서 큰 싱글룸이나 작은 더블룸 가격이었다. 내방은 현관 정면에 있는 방인 줄 알았다. 아주머니께서 안내해 준 곳은 팬트리였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팬트리는 방이 아니다. 다용도실이다. 가로 7~80cm, 세로 2m도 안 되는 작은 수납공간이다. 그걸 방이라고 카페에 올린 것이었다. 팬트리 안에는 좌우에 선반이 있고, 선반 위에 뭔가가 올려져 있었다. 바닥에는 큰 여행 가방 3개와 쌀독이 있었다. 나는 운동을 오래 해서 체격이 큰 편이다. 상의 사이즈 3XL를 입는데, 좌우 선반 때문에 몸이 들어갈지도 의문이고, 바닥에 눕는다 한들 내 키가 거의 190cm인데 다리를 펼 수 있을지 걱정됐다.
옆방에 자리 없냐고 물어보니 그 방에는 여학생 둘이 있어서 안 된단다. 밤 11시가 다 됐을 때였다. 다른 방을 구해 나가기도 어려운 시간 아닌가? 비참하지만 팬트리에 들어갔다. 옆방에서 아저씨의 방귀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팬트리 벽이 합판인 것 같다. 조용히 한숨을 쉬며 누웠다. 똑바로 누울 수가 없어서 가방과 쌀독을 피해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누워 새우잠을 잤다. 차에서 자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집의 월세가 420파운드였다. 2베드 플랏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1베드였다. 트윈룸은 방이 아니라 거실이었다. 어쩐지 생활 공간이 전혀 없어서 이상하다 싶었다. 거실을 방으로 만들어 월 350을 받고, 팬트리 1박 10파운드씩 받아서 월세 충당하고 생활비까지 뽑고 계셨다. 다용도실을 아주 제대로 활용하고 계셨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에 아주머니께서 밥 같이 먹자고 부르셨다. 밥 안 주셔도 되는데 일단 자리에 앉았다. 여학생 두 명도 있었는데 7명이 그 작은 방에 들어가 앉으니 진짜 방이 꽉 찼다. 식사 자리에서 인사를 하는데 그 가족은 관광비자로 왔다. 관광비자로 와서 집을 렌트한 것을 보면 관광 목적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아저씨 나이가 30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여기서 취직할 생각이라고 하셨다. 그냥 네 하고 말걸 괜히 쓸데없는 소릴 했다. 관광비자로 워크퍼밋 신청할 수 없다고 했더니 왜 안 되느냐고 급발진을 하셨다. 그걸 나한테 따지면 어쩌자는 것인가?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취업하고,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겠다는 분이었다. 계속 말 섞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빨리 밥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집에서 빨리 나갈 생각뿐이었다. 진짜 어이없고 웃긴 게, 실제로 그렇게 하는 분들이 있었다. 내가 직접 봤다. 3명이나...아마 더 있었을 것이다.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자기도 하겠다고 저러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뭘 믿고 저러는지 그때는 몰랐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분들의 믿는 구석이 뭔지 알게 됐다. 할 말이 없더라...영국의 허술한 행정이 누군가에겐 다행이었던 시절이다.
노트북을 가져와 04카페에 접속해 방을 구했다. 아주머니께 방값을 드리고 나가려는데 돈 안 받을 테니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이러면 곤란했다. 내가 그 돈 아까워서 교회 나가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일단 돈부터 드렸다. 일요일에 성당에 나가기로 신부님과 약속했다. 성당에 간다고 거절했는데 미사 시간을 물으셨다. 오전이라고 답하니 교회 예배가 오후니까 한 번만 나와 달란다. 아니 성당 간다는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것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오후에 잠깐 들르겠다고 하고 그 집을 나왔다. 당연히 갈 생각은 없었다.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었던 것뿐이다. 팬트리에 사람 재울 때 알아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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